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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 작업실 탐방 (2) 이머젼시 스튜디오

미술인 11명이 공유하는 개인작업실이자 유동적인 협력 단체 ‘이머젼시 스튜디오(Emergency Studio)’를 만났다. 이번 인터뷰에는 강은희, 박예나, 이해련, 한혜성 작가가 참여해 팬데믹 이후의 작업과 문래동에서의 미술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른 일보다 미술이 더 '이머젼시‘할 수 있도록 서로 힘을 모으고 있다”는 그들과의 대화는 인터뷰를 진행한 상업화랑 기획팀(김명진, 황선애)에게도 미술에 대한 애정과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이머젼시 스튜디오 작업실의 모습

Q. 각자 간단한 소개를 부탁합니다. 어떤 일들을 해왔고,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요?


강은희 (이하 은희)  @eun0hee  eunheekang.com 

저는 토템적인 사물을 만들거나 이야기 기반의 퍼포먼스, 영상, 음성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자본과 엮여 있는 도시 구조나 온라인 환경의 안과 밖을 바라보며 작업합니다. 개인전 ⟪디스턴트 콜링》(2019)에서는 장거리 통화를 하는 두 친구의 대화를 통해서 이미 두터워진 미래에 대한 불안을 들춰보고, 도시가 소외시킨 대상을 소환해보는 시도를 했습니다. 또한 전시장 밖에서 이루어지는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전시 ⟪광장/조각/내기》(2020)에서는 관객을 대형 쇼핑몰 지하주차장으로 초대해, 관객이 탑승한 차량을 운전하며 쇼핑몰 지하와 지상을 오가는 ‘드라이브 퍼포먼스’를 진행했습니다.

강은희, 《디스턴트 콜링》(공간17177, 서울, 2019) 전시전경

강은희, <라이브 드라이브(Nest Under and Crawl Deeper)>, 드라이브 퍼포먼스, 2020

www.p-p-p.site

박예나 (이하 예나)  @yenaprk   www.yenap.org

저는 쓸모 없어진 일상적이고 인공적인 사물들을 수집하여 작업합니다. 물질의 삶과 죽음의 사이클에 대한 생각 속에서 수집한 사물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재활용하고, 이때 움직이는 장치나 가상공간과 같은 다른 매체들과 결합하여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상업화랑 기획전 ⟪지금은 과거가 될 수 있을까》(2021)에서 인공물질 이후의 세계에 대한 상상이 담긴 <포스트-퓨처 그라운드> 프로젝트의 일부 작업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박예나, 《이탈을 위한 움직임》(Atertain Stage, 서울, 2017) 전시전경

박예나, <Dead Skin Cells of the Earth>, 인터렉티브 가상 환경, 2020. 상업화랑 기획전 《지금은 과거가 될 수 있을까》에서 전시 중.

이해련 (이하 해련)  @ryunderstand   leehaeryun.com

저는 테크놀로지가 발전하고 점점 편리해지는 사회에서 느끼는 불편한 감상을 입체, 설치 작업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불편함을 유발하는 대상을 흉내 내며 과장하거나 반대로 그에 무심한 태도를 취해 보는 방식으로 작업을 합니다. 작품에 블랙코미디 요소를 가미할 때가 많은데 결국 저의 작업으로 고품격 개그를 하고 싶은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해련, 《Summer Cheer》(서교예술실험센터, 2020)  전시전경

이해련, <PT-8000 농락체>, PT-8000, 아두이노, 모형 무, 가변설치, 2018

한혜성 (이하 혜성)

환경문제에 관하여 인간 행동의 모순성을 찾는 작업을 해 왔고, 현재는 유리라는 재료를 통해 인간의 모습을 관찰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한혜성, <흡연실>, 가변설치, 마스크, 2018

한혜성, <ㅇ回ㅇ>, 유리, 2021

Q. 이머젼시 스튜디오가 결성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은희) 이머젼시 스튜디오는 2018년 초에 대학원을 졸업한 5명의 친구들이 새로운 작업실이 필요해지면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다들 입체를 베이스로 작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형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어요. 널찍하고 소음이 있어도 괜찮은 공간으로 여러 지역을 찾아보다가 문래에 오게 되었습니다.

예나) 그때 다들 짐이 엄청 많았어요. 

은희) ‘이머젼시'라는 이름은 그때 공간을 만들면서 정해졌습니다. 당시 저희에게 공간이 긴급한 상황이었죠. 학교에서 쫓겨나 모든 짐들을 들고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하면서 긴급하게 공간을 찾게 되었고 긴급하게 뭉치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머젼시 스튜디오란 이름으로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Q. 현재도 초창기 멤버들과 함께하고 있나요?


은희) 초기멤버 5명(강은희, 권현빈, 박지원, 박예나, 장윤정)중 저와 예나 작가만 남아 작업실을 사용하고 있어요.

예나) 현재는 11명이 있습니다.

 

Q. 그렇다면 이머젼시 스튜디오는 현재 어떻게 운영되나요?


은희, 예나) 3층에서는 각종 공구들로 입체 제작 작업을 하고, 2층은 개인 공간으로 이용합니다. 정진욱 작가가 운영하는 ‘베타룸’(3층)을 공유하면서 2층에 있던 공작실이 3층으로 옮겨지게 되었어요. 공간의 정체성은 개인 작업을 위한 작업실이기 때문에, 자리가 필요한 사람이 들어오고 나가게 되는 구조라 멤버는 유동적입니다.

공작실 ‘베타룸’의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머젼시 내부에서 협력하는 서브그룹들이 생겨요. 기획그룹 ‘오디루 프로젝트’가 2018년도에 2개의 전시를 기획했었고, 2019년도에는 김맑음 기획자와 정진욱 작가의 ‘문래몰래문래'가 있었습니다. 올해 역시 4명의 멤버들이 예술 능력 공유사업 교육 프로그램 ‘핑퐁’을 진행하려 합니다. 공간을 공유하는 덕분에 개인 작업 외에도 관심사가 비슷한 작가들끼리 협업하기에 좋은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고는 합니다.

 

Q. 스튜디오가 컴퍼니화 되어가는 건가요?


예나) 그런 부분이 있는 게, 같은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다 보면 현실적인 문제들을 나누게 되어요. ‘우리도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아이디어도 공유하고, 함께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이것저것 일어나게 되는 거죠.

 

은희) 그 부분에 있어 개인 목표가 아닌, 공동체로서 이머젼시 스튜디오의 목표도 생기는 것 같아요. 20대 후반에 학교를 나오면서 제일 급했던 건 작업실이었지만 현 시점에서 가장 긴급한 것은 무엇인가 했을 때, 함께 작업을 이어나가는 작가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작업실이라는 공간으로만 뭉치기에는 너무 느슨하거든요. 그래서 같이 능력들을 투자하고 파이를 나눠 가져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는 프로젝트나 사업을 기획하게 됩니다.

 

해련) 서로에게 ‘이 부분이 필요한데’ ‘누가 할 줄 안다’는 식으로 서로 돕는 상황이 생겨나면서 자연스레 공동체로서 협력할 수 있는 기능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예나) 예를 들어 글쓰기를 잘하는 작가, 영상을 잘 만드는 작가, 공구를 잘 다루는 작가 등 각자가 가진 능력이 다양해요. 그리고 필요에 따라 서로 공구를 대여해 주기도 하고요.



 Q. 이머젼시 스튜디오의 멤버들은 어떻게 모집되었나요?


은희) 주변에 작업실이 필요한 작가들이나, 아는 동료 작가들의 소개로 멤버들이 모집되었어요. 하지만 빈자리가 생기면 작업실 커뮤니티에 포스팅을 올려 공개적으로 모집하기도 합니다.

 

해련) 제가 여기에 들어온 것은 작년에 코로나-19 상황과 맞물리면서 개인전을 준비할 때였어요. 당시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학교 공간 사용이 제한되었고, 당장 작업할 공간이 없어서 정말 ‘이머젼시’하게 공간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이 공간을 정진욱 작가가 알려줬어요. 그 덕에 개인전을 준비할 수 있었고, 이후 현재까지 잘 눌러 앉아(?) 있답니다. 이곳에 온 지 일 년이 되지 않았지만 제 집처럼 잘 지내고 있어요.

 

예나) 혹시 코로나 때문에 들어오신 다른 분들 또 있나요?

혜성) 저도 그 무렵에 왔어요. 당시에 작업실을 구하기 힘들었는데, (상황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모집하는 곳으로 가기에는 서로 모르는 상태여서 조심스러웠던 것 같아요. 

 


Q. 코로나 팬데믹이 선언된 지도 벌써 1년 남짓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전시, 작업, 삶 가운데 팬데믹 이후 변화된 부분이나 힘든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은희) 저는 팬데믹이 시작되고 나서 작업을 ‘셀프 프로젝트’로 보여주는 방향을 선택했어요. 지난 6월에는 온라인으로 음성 스트리밍 <떠다니는 목소리: 썬라이즈(Hovering Voice: Sunrise)>를 진행했는데, 저는 오히려 전시장에 기대어 있지 못하기 때문에, 훨씬 더 개인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서 자율성을 찾으려 했습니다. 혼자 하기 때문에 거치지 않아도 되는 과정들이 있고, 힘을 풀고 진행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프로젝트의 데드라인이 필요했었는데 해가 가장 긴 날인 ‘하지’라는 자연현상을 데드라인 삼아 작업하게 되었어요. 작업은 태양에 관련된 음성 작업인데 하루에 해가 가장 먼저 뜨고 지는 나라의 시간을 계산해보면 36시간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음성을 36시간 라이브 스트리밍하게 되었습니다.

강은희, <떠다니는 목소리: 썬라이즈(Hovering Voice: Sunrise)>, 온라인 스트리밍, 2020

예나) 저는 그때 영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모든 시설이 문을 닫았어요. 한국도 그랬겠지만 영국은 훨씬 심했던 것 같아요. 제작하고 있던 물질적인 작업을 기숙사로 가져와 혼자 마무리를 해야만 했습니다. 당시 2-3개월 동안 방에 갇혀 지내면서 ‘유니티(Unity)' 프로그램을 독학해 비물질적인 작업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텅 빈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인공구조물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들을 수집하기도 했어요. 당시 팬데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변경했던 부분들이 프로젝트의 내용과 결과적으로 잘 연결되는 것 같아요. 다소 아쉬웠던 부분은, 준비 기간이 점점 늘어지고 제작도 원하는 만큼 완벽하게 끝낼 수 없었다는 거예요. 용접을 하려 해도 용접을 할 수 있는 데가 없고 계속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죠.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같은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 지치는 부분이 있어요.

 

해련) 저 같은 경우 작업이 코로나로 피해를 봤다기보다는 제 성향 상 흐름에 흘러가는 편이라, 코로나-19를 맞닥뜨렸을 때 ‘나에게 또 다른 챌린지 상황이 벌어졌구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맞춰 살아보기로 받아들였습니다. 어쨌든 작가들은 늘 위기를 기회 삼아 새로운 창작을 꾀해왔으니까요.

 

은희) 저도 작가로서 이 상황이 주는 한계를 최대한 긍정적으로 극복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원래 있던 구조에서 벗어나는 더 재미있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매년 하는 ‘셀프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고요.

 

해련) 저는 작년 첫 개인전 《Summer Cheer》(2020)을 했는데, 객관적인 상황으로 보았을 때 최악이었습니다. 코로나로 사람들이 바깥에 나오기 힘든 상황이었고 이상 기후로 폭우가 쏟아졌어요. 하지만 그 상황은 제 작업과는 매우 잘 어울렸어요. 저는 가습기를 대량 가동해 가습기능이 극대화된 환경을 전시공간에 조성했는데, 비가 많이 내려 안과 밖 모두 습도 높은 불쾌한 환경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전시공간은 더욱 불쾌했죠. 쾌적하고 친절한 공간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불편을 들여오는 일이 제가 코로나 시대에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하나는 거리두기 2.5단계 기간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정당한 휴식을 할 수 있어서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집콕’이 권장되었기 때문에 1000피스 퍼즐을 맞추며 밀린 영화를 볼 수 있었어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지금 열심히 쉬어보자’ 했어요.

 

혜성) 저는 코로나 전부터 마스크로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그 당시에 미세먼지 관련해서 마스크를 다루기 시작했는데, 이렇게까지 일상생활이 될 줄 몰랐죠. 저는 코로나로 가장 힘든 때가, (팬데믹을) 부정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는데 현실도피를 하려고 하는 저와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지만 전 세계 사람들이 지금 이 시기를 겪고 있고, 이 땅에 태어난 존재라면 다 공감할 수 있는 상황이니 달리 보면 이게 ‘예술로서 공감을 하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해련) 저는 어린이와 만나는 일들을 부업으로 하고 있는데, 이제는 어린이들이 모두 집에서 타인을 경계하는 교육을 먼저 받고 와요. 학교에서도 쉬는 시간에 친구들끼리 놀 수가 없고 그냥 앉아 있다고 하더라고요. 유대관계를 형성하기 이전에 ‘잠재적 감염자’를 피하는 거리두기 교육을 먼저 받게 되니, 지금 이 시기에 유아기,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가치관을 형성할 때 앞으로 ‘나비효과’가 점점 커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예나) 우리는 현실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살고 있는데, 이제는 이것 이후에 변화된 부분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도 예술가로서는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고 재미있는 요소도 있었다는 건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이태원, 망원, 을지로 등 미술계에서 활동 중인 작가들이 군집하여 작업실을 꾸리는 몇몇 지역들이 있습니다. 그중 문래에서 작업하는 것의 장단점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문래동만의 매력이 있을까요?


은희) 3년간 문래에서 지내면서 이곳이 독특하게 느껴지는 지점은 문래 특유의 지형에 있어요. 문래는 단층 건물이 많아 아침에 철공소 셔터가 열리면 모두가 일하는 모습이 펼쳐져 보이고, 블록 단위로 된 동네의 지형을 유지하고 있어요. 저도 이런 지형 안에서 어느 정도의 편안함을 느껴요. 창작자로서도 제작이 일어나는 풍경 안에 ‘들어와 있다’는 데에서 동질감을 느끼죠.

 

혜성) 저도 그 말에 공감하는 게, 마치 공부하러 독서실 가면 분위기가 딱 잡히는 것처럼 여기 사람들도 다 뭔가를 만들고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이제 작업하러 들어가야지’ 하는 무의식적인 작용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공작실 ‘베타룸’ 공구들의 모습

예나) 지하철에서 작업실로 오는 골목에 철공소들이 빼곡한데, 다들 바쁘게 뭔가를 만들고 있거든요. ‘다들 열심히 살고 있구나.’ 그런 느낌을 받게 되죠. 그런데 또 골목골목 들어가면 우리 세대가 필요로 하는 문화공간이나 분위기 있는 카페가 있고, 먹고 싶은 것 다 찾을 수 있는 환경이잖아요.

 

은희) 다른 두 세대가 겹쳐지는 공간인데, 이게 낮과 밤으로 나눠지는 것 같아요. 아침 8시쯤에는 철공소 셔터가 열려요. 그리고 6시쯤 이 셔터가 닫히는 순간 옆에 있는 와인 집 셔터가 열려요. 낮에 있는 사람들의 유형과 인구 밀집도가 밤이랑 상이해서, 낮의 문래랑 밤의 문래가 다른 느낌이죠.

 


Q. 문래동에서 소개하고 싶은 장소가 있다면? (식당, 카페, 공방, 다른 문화공간 등 어떤 것도 좋습니다.)


예나) 정말 다양한 문화공간이 많은 것 같아요. 이 건물 바로 옆 지하에 ‘GBN’이라는 데스-헤비메탈 공연장이 있어요. 코로나 전에는 공연이 있는 날이면 그 앞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곤 했고, 문래의 다양한 면면을 관찰할 수 있어 흥미로웠어요.


은희) 저도 여기에 GBN 라이브하우스가 있는 게, 철공소와 서브컬처가 섞인 미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서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커피 둘세’ 또한 매니악한 감수성의 책이나 수집품으로 공간을 꾸며 놓았다는 점이 재미있어요.

해련) 맞아요. 이토 준지 평론집이라든지, 쉽게 볼 수 없는 흥미로운 책이 있더라고요.

 

예나) 다양한 카페가 많아요. 공장을 개조해서 만든 ‘라크라센터’도 유명하고요. ‘메이커스 유니온 스퀘어’는 특이하게 건물 4층에 있는 카페인데, 3D 프린터가 있어서 제작도 하는 것 같아요. 게다가 고양이가 두 마리나 있어요.

 

혜성) 저는 스시집 ‘초밥마트’를 이야기하고 싶어요. 눈 오는 날에 줄을 서서 먹었었는데, 초밥을 그 장소에서 먹는 게 아니라 아예 테이크아웃용으로 만들어 놨다는 게 뭔가 ‘문래스럽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여기서 일하시는 아저씨들을 타겟으로 한 건 물론 아니겠지만, 일하시는 분들이 배달음식을 드시고 계신 그런 풍경과 겹쳐져서요.

 

해련) 제가 여기 올 때쯤 ‘더 플라스틱 클라이밍’이 새로 생겼는데, 흥미로운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클라이밍이라는 운동이 20대 인스타그래머들에게 특화된 운동이다 보니 ‘감성 암장’ 으로 유명하고, 사진이 예쁘게 나오는 분위기를 세팅해 놓은 공간이더라고요. 공장을 개조해서 암장을 만들었다는 것도 20대들이 좋아할 만한 환경과 요소들을 많이 고려한 것 같아요.

 

은희) 저는 문래에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새로 생겨나는 음식점들을 보면서 느껴요. ‘퇴근길호프’나 ‘문래돼지불백’ 같이 이 지역에서 시작한 토박이 식당들이 있는데, 다른 지역에서 온 체인점이 많아지고 ‘잠수교집’이 여기에 생기는 순간 그런 걸 느꼈죠.

 

예나) 토박이 식당들도 일종의 공동체로서 여기서 처음 시작한 곳들인데, 이제는 체인점들이 들어오면서 이곳만의 매력을 조금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은희) 주변 이야기를 들어 보면 건물주의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는 측면도 있어요. 그런 것들이 동네 분위기의 변화와 일치하는 것 같고, 젠트리피케이션이 더 빨리 일어날 거라는 우려를 불러 일으키죠.

 

예나) 지역 문화 공간을 좀 더 말씀드리자면, 도자기 공방 ‘도순도순’이 있어요.

은희) 해련 씨 같은 경우 가마가 필요할 때 그곳을 이용하기도 해요. 작업하면서 근처에 이런저런 공방이나 제작소들이 있으니 잘 이용하게 되는 것 같아요.

 


Q. 앞으로의 활동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올해 예정된 전시나 활동, 목표 등)


은희) 개인적으로는 앤드그라운드 (A/END GROUND)라는 예술인연구모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전시장 밖에서 일어나는 전시를 오프사이트(off-site) 전시라고 하는데, 전시장 안,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리서치하려고 해요. 저의 작업과 연관해서 재미있는 일들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올해 중순에 세마 벙커에서 있을 단체전을 통해 새로운 작업을 보여드리게 될 것 같아요.

 

예나) 저는 올해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 작년에 미뤄졌던 전시 몇 개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작년에 수상한 트레블 어워드로 이탈리아의 피렌체에 가게 되었어요. 피렌체에서 두 달 정도 머무르며, 지역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면서 작업할 계획입니다. 그 후에는 한국에 돌아와 이머젼시 스튜디오 사람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해요.

그런데 올해는 계획을 확정하기가 힘들긴 해요. 원래대로라면 이미 영국에 있어야 하는 시기인데 비행기 표도 계속 미루고 있고, 또 뭔가 변종 바이러스가 터진다면 못 가는 거예요. 계획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바뀔 수 있는 것들이죠.

 

해련) 저는 올해 상반기에 서울예술교육센터에서 청소년과의 공동창작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제 작업을 밀레니엄 이후 세대들은 과연 어떻게 이해해줄지 기대 반 걱정 반입니다.

 

혜성) 저는 작년부터 공방에서 유리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올해는 배운 유리 작업을 토대로 작업을 열심히 하는 것이 계획입니다.

 

은희) ‘이머젼시 스튜디오’의 목표는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공동 작업실로 운영되는 것 외에도, 창작 공동체로서 지속 가능한 사업이나 프로젝트를 자체적으로 해내는 것이에요. 창작이 ‘비싼 취미’가 되지 않기 위해 더 보여줄 수 있는 장을 필요로 하는 것이고, 판매가 될 수 있는 루트나, 능력이 금전적인 가치로 환산될 수 있는 플랫폼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해련) ‘내일도 창작을 관두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삶’을 함께 고민하며 시도하고자 해요.

 

은희) 항상 그런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오늘은 예술을 하지만 내일은 안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일종의 위기의식이죠. 결국 이것이 가치가 있다고 믿고, 자기 동기로 하는 거니까요. 이것보다 다른 게 더 긴급해지면 순위가 밀려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그러지 않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한 거예요. 계속해서 미술이 ‘이머젼시’할 수 있게 하는 그런 장치를 만들려고 하는데,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에너지를 너무 소진하지 않고 같이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방식을 계속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진행  김명진, 황선애 (상업화랑 전시기획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