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페터 한드케(Peter Handke),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Short Letter, Long Farewell)』

오스트리아 출신 작가 페터 한드케(Peter Handke)의 소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는 1972년에 독일어로 처음 출판되었다. 젊은 오스트리아 작가가 별거중인 아내를 찾아 미국을 방문하고, 그 과정 속에서 펼쳐지는 짧은 여행기를 담았다. 영화감독인 존 포드(John Ford)와 같은 실제 인물이 등장하는 이 짧은 소설의 매력은 2019년 노벨 프라이즈를 수상한 소설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다소 짧은 책 속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독자의 호흡과 함께 살아 숨 쉰다는 것이다. 판타지 소설에 등장하는 거대한 여행기가 아닌, 어디서나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은 지극히 평범한 한 예술가의 여정은 담담히 ‘긴 이별’을 이야기한다.


긴 시간, 삶의 여정을 같이한 옛 연인에 대한 이야기는 증오와 애정, 그리고 쓰라린 상처를 끊임없이 마주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너무 달라져 버린 서로의 모습과 다른 곳을 바라보는 자신과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미국의 다양한 도시의 분위기와 배경, 도시의 빌딩, 도시 사람들의 모습과 함께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책의 첫 단락은 ‘짧은 편지’이다. 별거중인 아내 유디트가 남기고 간 아주 짧은 메모에서 시작된 주인공은 여정은 자신을 찾지 말라는 짧은 편지에서 시작된다. 두 번째 단락은 ‘긴 이별’이다.


나는 영어로 번역된 이 소설을 장차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음미하며 읽었었다. 사실, 이 책을 6개월 동안 읽었다고 말하기도 민망하리만큼 매우 짧게 구성된 글이다. 동서고금을 불문한 클리셰인 ‘연인의 이별’ ‘부부의 이혼’ 그리고 서로 남이 되어버린 연인에 대한 ‘향수’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문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 중 하나인 노벨상을 수상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디서나 읽고 볼 수 있는 소재를 다루었음에도, 이야기의 어떤 요소가 이 소설을 이만큼 매력 있게 만들어내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진정한 ‘창작자’는 대부분의 평범한 이들이 살아가며 마주하는 그저 그런 평범한 일상과 이야기를 특별하게 보여주는 이들이라고 본다. 아마 개인적인 취향과 기준이 이 책을 더 매력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었을지도 모르나, 분명 이 책이 가지고 있는 힘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먼저, 페터 한드케 특유의 대상과 인물을 살아 있게 만들어내는 표현력은 주인공의 독백과 주변 인물들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에서도 주인공의 성격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게 한다. 주인공은 욕조 안에서 미국의 저명한 소설가 F.S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를 분석하며, 오스트리아인(유럽인)의 시각으로 미국의 문화와 미국인들을 관찰하며 자신만의 관점을 독백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한다. 어떤 상황이나 등장인물들의 대화보다는 철저히 그의 내면의 변화와 감정, 그리고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인공의 의식 변화에 따른 세밀한 묘사가 이 소설이 지니고 있는 가장 큰 힘일 것이다.


또한, 이 소설을 완독한 후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지속되는 여운이 이 책을 강렬하게 만들어 주는 게 아닐까 싶다. 마치 잔잔하게 흘러가는 일본 영화와, 프랑스 영화 속 자유로움, 그리고 약간은 지루하지만 담백한 독일 영화를 오묘하게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이랄까- 영화 같은 소설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대사(언어)와, 시각적 효과 즉 가시적인 매체의 향연이라고 생각한다면, 글로만 구성된 소설이 그 글을 읽는 독자에게 선명한 상상과 그 상상에서 비롯된 잔상들을 남길 수 있다면, 그 소설은 성공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이 매우 위대한 소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독자와 같이 호흡하는 느낌을 선사하고, 어디에나 있을법한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들어내는 작가의 재능과 노력이, 시간이 흘러도 지속적으로 책의 줄거리를 생각나게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세상 어디에나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이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이 소설이 묘사하는 이별은 그렇게 극적이지도, 그렇게 슬프지도 않다. 어쩌면 너무나 담담하고 허무한 이별의 속성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된다. 한국어 번역본이 어느 정도 완성도를 지니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쉬운 문체로 번역되어있는 영어 번역본을 읽어보는 것도 추천한다. 팬더믹 상황으로 인해 어디도 자유롭게 다닐 수 없는 추운 겨울, 페터 한드케의 소설을 통해 잠시나마 미국의 쓸쓸한 풍경을 마주하며 감상에 젖어보는 것은 어떨까?



글 김성희 (상업화랑 전시기획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