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현 작가 인터뷰

올 4월에서 5월, 상업화랑에서는 정지현 작가의 개인전 ⟪One Way》가 열렸다. 흑백으로 채워진 정지현의 작업은 순수한 형태를 오롯이 보여준다. 스스로 작업에 대해 말하기보다 관람자에 의해 다양한 말들이 놓이길 바라는 작가를 만나 보았다.

One Way 전시 전경(1층), 상업화랑 을지로

Q1. ⟪One Way》 전시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작품들은 주로 공원이나 놀이터의 밤 풍경을 그린 것입니다. 도심의 가로등이 비추는 곳과 감추는 곳의 극명한 대비가 시선을 사로잡았고 그 선택의 이면에 숨어있는 정치·사회적인 코드를 공원과 놀이터의 놀이 기구를 통해서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또, 가로등 불빛에 의해 만들어지는 따뜻한 색들과 정서를 목탄이 가진 묵직함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Q2.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어떤 고민이 있으셨나요.

개인적인 소회를 말하자면 서울에서 하는 첫 개인전이고 그래서 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전시인 것 같습니다. 현재의 나를, 나의 작업을 객관적 시선으로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모든 전시가 그렇지만 이번 전시는 더 크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작업에 변화를 주어야 할 시기라는 생각 때문에 더 부담이 컸습니다. 어떤 것도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한 점 한 점 완성해 나가면서 조금씩 개념을 잡아 나갔던 것 같습니다. 작업실 곳곳에 남아있는 치열했던 흔적들을 보고 있으면 한편으론 뿌듯하기도 하고 ‘왜 이것밖에 하지 못했나?’ 하는 자책감이 혼재되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Q3. 최근 작업노트에서 “일상적인 것의 어느 부분을 도려내서 작업으로 옮길 것인지 생각하고 선택하는 일은 언제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고 하셨는데, 작업 대상을 선택하는 작가님의 기준이 있을까요?

작가 고유의 작품 형식이 완성된 경우에는 어떠한 대상을 선택해서 작업으로 옮기든 상관없겠지만, 제 경우에는 형식상 특이점이 확연히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소재 선택에 있어서 더 신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평이한 장면이나 서사는 저에게 가장 어렵고 난해한 소재입니다. 만약 나의 삶과 주변 환경이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특별한 지점이 있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겠지만, 여느 평범한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대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과 그것을 담아내는 형식에 대해서 항상 고민스럽습니다. 소재 선택의 기준을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힘든데 일상적인 것이 비일상적으로 보일 때,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어떤 대상을 발견했을 때, 그리기 욕구를 이기지 못할 때 정도입니다.

One Way 전시 전경(2층), 상업화랑 을지로

Q4. 작품의 영감은 어디에서 얻으시는지, 작품 제목은 어떻게 선택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머릿속에 부유하는 단어들, 이미지들, 기억들이 어느 순간 현실과 맞닿았을 때, 수많은 생각은 몇 가지 단어로 압축되어 시선의 그물망 됩니다. 시선의 그물망으로 포획된 이미지들을 다시 분류하고 선택해서 작업으로 옮깁니다. 때때로 아무 이유 없는 소재를 그리기도 합니다. 

작품 제목은 작업 하는 도중이나 마무리하면서 떠오르는 단어들로 주로 붙여왔는데, 그래서 좀 직설적인 점이 있지 않았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좀 더 확장된 개념으로 작업을 더 열어 줄 수 있는 제목을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Q5. 작업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과거와 비교했을 때 이번 전시 작업들에서 변화된 관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외부의 시선이나 평가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언젠가부터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자주 드는데, 그러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작업의 이면과 표면에 깊이를 만들어 내는 것에 관해서 고민하고 있고, 새로운 작업을 할 때마다 그리기 방법을 조금씩 바꿔서 그리고 있습니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크게 바뀐 것은 없으나, 변화된 것이 있다면 이전의 작업은 대상 자체에 집중했다면 이번 전시에 선보인 작업은 정서적인 부분의 연결에 더 집중했습니다.

Q6. 오로지 목탄으로 채워진 작업에서 수행적인 태도가 엿보이는데요. ‘그리기’보다는 ‘쌓기’혹은 ‘긋기’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목탄이라는 재료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회화에서 한국화로 전공을 바꾸면서 먹에 대응할 수 있는 대체재가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비교적 다루기 수월하면서 먹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목탄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선택한 목탄으로 오랫동안 작업하면서 전에 없던 애착도 생겼지만, 한편으론 무거운 족쇄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소묘에 대해서 외부의 부정적인 시선이나 평가에도 불구하고 아직 포기하지 못한 것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찾지 못한 일종의 반항심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목탄은 저에게 관념에 대한 무모한 도전입니다.

정지현, play ground-2101 한지에 목탄 145x112cm 2021

Q7. 앞으로의 작업 계획이 있으시다면?

현재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일단 크기를 줄여서 작업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놀이공원의 여러 기구를 그리면서 마치 정물화를 그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정물화를 본격적으로 작업해 보려고 합니다. 정물화의 역사를 살펴보던 중 기원전 2세기 페르가몬(Pergamon)의 모자이크 디자이너 ‘Sosus’의 <청소 안한 방 The Unswept Floor>이라는 작품을 보게 되었습니다. 술을 마시던 연회장 바닥에 있는 모자이크로 각종 음식 쓰레기 등이 그려져 있는데, 소재도 충격적이지만 그 구성도 현대적으로 느껴져서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이와 비슷한 컨셉으로 작업을 해보고 싶어서 어디를 가든지 바닥 쪽을 유심히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진행: 황선애, 김명진 (상업화랑 전시기획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