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NGSAN

위주리 개인전  |  @wijuri

《삭(朔)의 노래》

2026. 5. 12 - 6. 5.


삭(朔)의 노래



큰 힘은 거대한 구조나 화려한 성취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미세하고 작은 움직임들이 모여 수많은 시행착오와 경로를 거치며 느리지만 단단하게 쌓인 토대 위에서 태동한다고 믿는다. 당장은 비경제적이고 비효율적인 움직임으로 보이더라도, 그 안에는 우리 삶을 보다 풍요롭게 만드는 가치가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위주리 작가노트-


 

달이 가장 깊이 숨는 밤이 있다. 보름의 환한 얼굴 대신 하늘은 온통 어둠으로 가득 차고,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별들이 그제야 제 빛을 드러낸다. 삭(朔). 달의 위상 중 가장 어두운 첫날이자 천문학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관측의 밤이다. 그 밤에는 어둠이 무엇을 가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어둠이 깊어질수록 가려져 있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위주리의 이번 개인전은 그러한 시선에서 시작된다.


빠른 흐름 속에서 조용히 가라앉고 있는 것들이 있다. 매일 해도 티가 나지 않고 안 하면 비로소 티가 나는 살림과 육아 같은 돌봄이 그러하다. 거대한 성취의 잣대로는 좀처럼 호명되지 않지만 삶을 안에서부터 떠받쳐 온 시간, 누군가의 손에서 다른 누군가의 손으로 오늘에 닿은 흔적이 그러하다. 위주리는 그러한 자리에 오래 머물며 이 전시를 만들었다. 《삭(朔)의 노래》는 그렇게 가라앉는 빛을 건져 올리려는 조용하면서 끈질긴 수행이다.


어둠은 빛의 반대가 아니다. 작가가 응시하는 검음은 양가적이다. 한편으로는 돌봄의 시간이 품은 고됨과 지난함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시간이 쌓일수록 빛이 휘발되지 않고 머물 수 있는 자리가 만들어진다. 어둠이 충분히 깊어질 때에야, 비로소 그 위에 머물고 있던 어떤 빛이 보인다. 삭(朔)은 그러한 시선의 다른 이름이다.


그 시선은 작품의 작동 방식에도 새겨져 있다. 위주리의 작품은 가만히 서서 바라보는 이에게 좀처럼 자신을 내어주지 않는다. 어떤 면은 한쪽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갈 때에야 검음을 뒤집고 빛을 드러내고, 어떤 표면은 가까이 다가가 시선이 충분히 머문 뒤에야 그 너머의 결을 보여 준다. 어떤 작품들은 누군가의 움직임에 응답하면서 그제서야 자신을 연다. 그렇게 작품 앞에 서면 작가가 오래 쌓아 둔 시간 위에 누군가의 걸음이 더해지고, 마련해 놓은 자리에 시선이 더해진다. 작품을 작동시키는 일이 어쩌면 작품을 돌보는 일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작가가 응시해 온 미약한 가치들도 그러한 손길의 누적 위에서 오늘에 닿았다. 그렇다면 이 전시 안에서 관객은 잠시 돌보는 자의 자리에 함께 서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삭(朔)의 노래》가 그리는 어둠은 결국 비관의 어둠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보이지 않던 것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어떤 가능성의 어둠이다. 어떤 것은 보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보려는 태도 없이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라진다. 그리고 어떤 빛은 그 자체로 빛나기보다 누군가의 오랜 시간 위에서야 비로소 머무른다. 이 전시는 그러한 관계를 큰 목소리로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한 걸음씩 옮기는 발 아래에서 그 관계가 조용히 다시 짜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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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옥나라 @nara_okido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