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LJI-RO
박유동 Solo Exhibition
《만화×소녀×조각》
1 - 21. March. 2025
‘무한한 가치’ 이것은 인간의 자각이다. 인생은 한정된 시간에 무한의 가치를 생활하는 것. 인생에 있어서 모든 가치는 사랑이 그 바탕이다. 예술은 사랑의 가공. 예술은 한정된 공간에 무한의 질서를 설정하는 것. - 김종영, 『인생 예술 사랑-조각작품집』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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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을 오랜 시간 사랑할 수 있다면 그만큼 대단하고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중학교 3학년, 교내 전시를 준비하며 석분 점토로 만화 속 구체관절인형을 빚어보았던 경험은 조각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하였다. 손의 움직임에 따라 실체가 드러나는 인형을 보며 마치 조물주라도 된 듯 심취했던 기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언젠가 김종영 미술관에서 보았던 문장을 따라서 흙과 나무 그리고 돌을 깎고, 붙이고, 사포질하며 나의 사랑을 가공하고자 한다.
조각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아무리 그 크기가 작다고 한들 조각가가 신경을 써야 하는 면의 개수는 큰 것과 다르지 않다. 전기톱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울 때, 먼지는 또 얼마나 많이 날리는지 모른다. 이 때문에 조각이 가능한 작업실을 구하려 할 때, 큰 벽에 가로막힌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에서 쏟아지는 땀방울을 닦아낼 때는 나름 마음에 굳은살이 배긴 줄 알았으나, 고된 작업 중 소음 민원이 들어와 경찰이 작업실에 들어왔을 때는 곧바로 무너져 내리기도 하였다. 시간은 촉박한데 뜻대로 진행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작업실 한편에 굳건하게 서서 나를 기다리는 조각을 위해, 그저 순간을 생활하는 것에 온 힘을 다하였다.
《만화×소녀×조각》은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만화를 사랑하고, 조각을 사랑하는 마음은 따로 되지 않고 하나의 덩어리로서 어떤 소녀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매개가 된다. 만화는 조각의 형상을 결정하지만, 조각은 다시 만화의 형태를 뭉그러뜨린다. 바벨의 언어에서 벗어나고, 서로의 곁을 내어주며 작업은 완성되어 간다. 논리에 어긋남에도 순응할 수 밖에 없는 물질적 한계를 맞닥뜨릴 때, 나의 미숙함도 마주하게 되었다. 그러나 적어도 본 전시를 준비하며 다원적 세계 속 만화라는 평면과 조각이라는 입체를 합일하는 것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작업을 해나갔다.
이것이 나의 사랑이자 우주임을 확신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