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JIK

김지민 Solo Exhibition


《Prototype Temple: The Murder Case》

9. March - 20. April 2024

   《Prototype Temple: 살인 사건》에서는 지난 3년간의 Prototype Temple 시리즈에 등장했던 살인 사건들이 재조명된다. 전시는 섬세하고 혼란스럽게 겹쳐 서로에게 상호 작용 하고 있는 씬들로 구성되었다. 죽임을 당한 주체와 살인을 행한 자가 무엇인지 혼란을 조성하도록 만들어졌다.

 

   산불 지역들을 답사하며 까맣게 타버린 고사목과 그 현장을 조사함으로 시작해 원자력 사고지에 매번 등장하는 붉은 숲(The Red Forest)에서 받았던 죽음에 대한 인상들[1]을 기록하였다.

붉은 숲이 현현하는 죽음은 일순간에 휘발되어, 깨닫지도 못한 사이에 생을 빼앗긴 유령처럼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붉은 숲의 나무들은 완전한 죽음에 이르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찾아온 그리고 유지되는 침묵에 가깝다. 붉은 숲의 연장으로 진행된 나무의 죽음과 신화에 대한 리서치의 중심에는 예로부터 서구권에서 죽음을 상징하는 주목나무(yew)가 있다. 스톤헨지와 피라미드보다 오래된 주목들이다. 주목의 죽음에 대한 상징은 너무나 오래 살기 때문이기도 하고 오래된 그 나무의 음울한 외형 때문이기도 하다. 셰익스피어는 주목이 "이중으로 치명적인"이라 표현했는데, 이는 주목의 가지에 독이 있을 뿐 아니라 그 가지로 만들어진 활이 전쟁터에서 쓰였기 때문이다. 토마스 그레이는 시골 묘지에서 쓴 비가에서 늙은 주목은 시신을 뿌리로 에워싼 괴물이라 표현하였고, 테니슨은 절친한 친구였던 아서 핼럼의 비통한 죽음 앞에서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교회 묘지의 '늙은 주목'에 직관적으로 눈을 돌린다. 갑작스러운 사별로 충격에 빠진 그에게 묘지의 주목은 비석을 움켜쥐고 그 아래 묻힌 시신을 질긴 뿌리로 에워싼 괴물로 느껴진다. 사랑하는 명석한 친구 핼럼이 요절한 반면 '늙은 주목'이 여전히 왕성하게 살아남은 모습에 분노한다.

작가는 붉은 숲을 본 후에 여러 작품들에서 주목이 현현하는 죽음을 펄떡이는 생처럼 우울과 죽음의 멜랑콜리로 표현한다.


   고대 로마 주택 정원(Domus)의 프레스코 벽화들에는 로마인들이 사랑했던 주목 나무들이 가득 그려져 있다. 유폐된 로마의 유적(특히 폼페이)을 볼 때 느끼는 공통적인 감정 - 찬란했던 그들의 향락적 과거, 사람들이 가슴을 열고 온갖 술이 흘러넘치는 축제(마치 랭보의 시구처럼)가 일순 휘발되어 사라진 - 이제는 모래로 뒤덮인 그들의 주택정원 안에 마치 그 시절 사람들의 음악과 환영이 메아리치는 것 같은 환상을 설치적으로 구현하여 붉은 숲의 휘발된 죽음을, 시간의 단축[2]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전시는 로마의 건축적 구조를 따라 설치되었고 특히 작가가 좋아하던 로마 주택 정원의 Compluvium과 Impluvium의 구조에서 비가 오지 않는 날 물이 말라 있고 Compluvium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시간에 따라 위치를 옮기며 Impluvium의 모양이 맞춰지지 않고 빗겨 나가는 모양을 재현하여 그 햇살을 바라볼 때 느끼던 지나간 문명이 가져다 주는 따뜻한 노스탈지아를 이야기하고자 하였다. 사운드는 로마에서 연주되었을 리라의 소리 등을 조합해 제작하였다.


   〈폐허 속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벽화들이 남아있다. 찬란한 역사의 폐허에서 열광적으로 죽음의 흔적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 찬란했던, 지금은 흔적만 남은 고대 로마 주택 정원(Domus)의 구조를 닮은 전시장을 구성하였다. 우리는 지나간 자들의 집에 앉아 죽은 자, 죽은 나무의 파토스를 들으며 본 전시의 살인 사건들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주목 아래서 잠들거라. 가끔 꿈 속에서 진실을 알려줄 테니···"

- 막스 다우텐데이 Max Dauthendey의 시〈구애에 관한 노래〉 중




[1] 붉은 숲은 원자력 사고가 일어난 체르노빌, 후쿠시마 등의 지역에서 동일하게 발생하는 현상으로 그 지역에 있던 숲이 통째로 붉게 변해버린다. 방사능으로 인해 사고 당시에 모든 나무들이 일시에 죽어버리는데 이 나무들을 분해하고 썩게 할 미생물들마저 함께 죽어버려 죽은 나무들이 썩지 못해 10년 20년의 긴 세월동안 잎이 모두 붉게 변해 버린 채 유령처럼 박제처럼 그 자리에 서 있다.

[2] "··· 갑자기 순간적으로 가능해진 '강렬한 조기 결실' (중략) ··· 시간의 범위를 밤의 밖으로, 그리고 낮의 밖으로, 기이하게 확장하기 위해 시간에서 솟아오른 비시간. 시간의 단축으로서의 이러한 시간", 파스칼 키냐르, 하룻낮의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