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JIK
정용국.권경환.김지민 Group Exhibition
<내일의내일을내일은>
28. October - 26. November 2023
내일의 내일을 내일은
20세기 중반 모더니스트들이 꿈꾸었던 화이트큐브의 유토피아상과 달리 21세기 현재 회화는 여전히 진공의 평면이 아닌 현실의 시간과 공간 안에서 작동하고 있다. 오히려 모더니스트들의 등장으로 인해, 그들이 꿈꾸었던 회화의 이상-상을 거울로 삼아 평면과 회화적 재현의 일루젼 사이를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많은 이들이 의식하고 활용하게 되었다 해도 무방할 것이다. 작가들이 기술적으로 회화의 일루젼을 이용하고, 뒤집어 끌어들임으로서 화면 안에선 작가들이 구축한 각각의 세상이 세워지고 서사가 화면의 앞 뒤 맥락을 구성하거나 회화 자체가 서사의 구성물로 편입되기도 한다.
내일은 분명 오늘이 되지만 그럼에도 결코 내일 그 자체로는 도착할 수 없는 세계로, 존재하되 허구적 존재자일 수밖에 없는 화면 속 구축 된 세계와 닮아있다. 그리고 이 단어 내일에 3가지 조사를 더한 전시 제목은 ‘화면 안에 각자의 ‘내일’을 구성하면서도 서로 다른 인식과 이야기를 펼쳐내는 작가들의 작업, 접근 방식 사이의 간격을 담아낸다.
정용국은 동양화라는 장르적 틀을 재료로 삼아 전통 산수의 삼원법을 비틀거나 먹의 물질성을 프린터의 잉크로 치환하는 등 다양한 형식 실험을 화면 안에 담아왔다. 이번에 전시되는 <수면의 원근법>과 <White Night> 시리즈는 흑백화면을 가져가되 종이에 숯, 목탄을 이용한 작업이다. <White Night>는 일상의 단면을, <수면의 원근법>은 수면매립지 위에 세워진 아파트의 모습을 담아낸다. 사실적 묘사는 흔히 전달자의 중립적 태도로 인식 되지만, 실상 이 작업들은 스며드는 성질의 먹과 달리 화면위에 얹어지는 성질의 매체를 이용하여 옮겨진 주변의 풍경은 일상성과 대비되며 작가적 개입을 적극적으로 상기시키며 일상적 풍경에서 작가가 포착한 ‘불시착해 미끄러지는’ 감각의 세계를 구축한다. 작가가 그려낸 ‘내일’은 우리의 시선을 수직으로 이끌어 올리는 거대한 건축물 그 아래, 남겨진 얕은 물에 비친 폭력의 잔상이다.
권경환의 작업은 다양한 매체와 방식을 오가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Untitled> 회화 작업을 선보인다. 2010년대 전후로 제작된 이 작업들은 사실적 묘사의 기술로 캐릭터와 결합한 허구적 이미지를 그려낸다. 이러한 이미지는 타인의 고통이 ‘핫한 토픽’으로 소비되는 동시에 ‘전쟁은 과거의 일’로 받아들이는 고통에서 유리된 동시대적 감각, 그 솔직한 자기 체험의 묘사라고도 할 수 있다. 리히텐슈타인 류 팝아트적 알레고리로도 느껴지는 화려한 파괴, 폭력의 순간들은 현실적 이미지와는 괴리되어 있는, 현실에서 마주칠 일 없는 내일이다. 그러나 팝아트가 그러했듯 그런 소재와 상징으로 그려진 내일은 오히려 제 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전쟁을 스스로와 분리하는 동시대의 풍경에 가장 근접한 시점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김지민의 회화 작업은 추상과 구상 사이에서 회화적으로 작동하는 한편 ‘프로토타입 템플’이라는 하나의 종합설치 작업의 일부이기도 하다. 회화이자 그 자체로 시공간 구축의 도구가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회화 내적으로는 어떨까. 추상은 흔히 모더니티의 감각으로 이해되곤 하지만 김지민의 추상 작업은 외려 현실 풍경의 적극적 번역, 회화 평면과 매체의 한계에 대한 적극적 드러냄이다. 과거의 흔적으로 남은 풍경을 포착한 이미지를 이를 다시 추상적으로 묘사하는 과정에서 구성된 시공간은 현재를 살아감에도 살아보지 못한 과거에서 강한 향수를 느끼는 작가 자신이 살아가는 내일일 것이다.
전시의 제목은 이어지는 문장일 수도 있고 서로 분리된 문구일 수도 있다. ‘내일의 내일’을, 내일은 기필코... 라던가, 내일의 / 내일을 / 내일은 으로 라던가. 제목에서부터 이어지는 해석의 가능성 내진 각 구절간 의미의 단차는 회화라는 같은 매체, 모노크롬 색조의 화면, 회화적 일루젼이라는 같은 수단을 이용하면서도 각자의 방향으로 나아가 도달할 내일의 방향성의 지표가 된다. 그 방향성을 지표삼아 3인의 작가가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해낸 시공간이 놓인 방향, 나아가는 내일을 관찰해보는 기회가 되길 바래본다.
글. 문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