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JIK

노충현 Solo Exhibition


<室密室 Closed-Door Room 실밀실> 

2. September - 15. October 2023 

<실밀실室密室>(2009, 사루비아 다방) 전시를 연지 13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한강공원과 홍제천의 풍경을 간간이 그려 전시하였습니다. <실밀실>은 <살풍경>이나 <그늘>과는 달리 실제로 촬영한 사진이외에 인터넷에서 발견한 이미지를 모아 그린 것입니다. 이 이미지들은 일상에 가려진 현실에 좀 더 다가서기 위해 필요했습니다. 즐겨 그려왔던 일상의 풍경이 어느 시점에서는 그림의 소재로서 부적절하게 느껴졌습니다. 화가이면서도 시민이기에 감상적인 일상의 풍경만을 그려내기에는 오늘의 현실이 가혹하지 않나 싶습니다. 내가 사용한 사진들은 가까운 시기의 것도 있고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사진도 있습니다. 저널이즘적인 사진과 영상이 넘치는 이때에 부재하는 인물과 사건을 담은 과거의 사진을 부여잡고 그것을 그리는 행위 혹은 그림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요. 


 루이지 기리Luigi Ghirri는 사진이란 ‘보여야할 것과 보이지 말아야할 것 사이의 적절한 균형’이라 말합니다. 이러한 이중성은 빛과 어둠의 관계를 통해 표현됩니다. 내가 그려온 일상의 풍경들은 어둠보다 빛이 전면적으로 드러난 경우가 많습니다. 서울이 지닌 민낯의 풍경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실밀실>의 경우에는 어둠이 상대적으로 짙습니다. 

 주로 사용된 사진들은 국가기록원에 저장된 디지털사진으로 국정을 기록하고 홍보하는 것에 그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나는 이러한 사진을 이용하는데 있어서 기록사진이 보여주려는 것을 약화시키고 보이지 않는 것을 회화로 붙잡고자 했습니다. 회화로 그려진 과거의 사진이 시간을 넘어 현재로 호출될 수 있다면 바로 이 지점일 것입니다. 사회정치적 사진들이 까다로운 것은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과 목적이 분명하기에 그것에 붙들려 회화의 자연스러움이 방해받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동안 실천해온 회화적 태도와 방법이 소재와 갈등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곤란함을 비켜가기 위해 사건과 서사를 약화시키고 분위기를 통해 주제의식을 전달하는 방식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사진의 부분을 자르거나 색채를 단순화시키고 명암을 조정함으로써 원래의 사진이 지닌 목적을 전치하는 방식으로 그리려 했습니다. 분위기는 빛보다는 어둠의 분포와 밀도에 따라 조성되는데, 분위기는 특정한 사건이 아닌 일상의 저 밑에 숨겨둔 근원적인 두려움과 공포, 실존에 대한 위기감을 마주하는데 유효한 수단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 아래 어딘가에 현실이 묻어있지 않을까요.  


 어느 봄날 한 노동자가 공권력에 의해 무참히 진압되는 장면이 뉴스로 생생하게 중계되었습니다. 그 영상은 마치 근대이전 광장에서 자행된 화형이나 참수형을 떠올리게 하면서 시민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처럼 느껴졌습니다. 순간, 그 장면을 보고 있을 그의 가족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뉴스와 일상의 무수한 이미지들이 무감각하게 소비되고 휘발되는 현실에서도 누군가의 마음에서는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소외된 아픔들이 멍울져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꺼내 바라보려는 것이 이 전시의 시작점이었습니다.



-글.노충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