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LJI-RO


강민재 Solo Exhibition

<빙>

23. May 2023 - 4. Jun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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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이 시간들 밖에서 걷고 있다. 시간을 보낸다는 건 날 때부터의 시간에서 계속 멀어지고 있는 거니까. 그렇게 각자의 시간 가운데 발걸음이 멈추는 곳에서는 서로의 시간이 잠깐 겹쳐진다. 우린 그 안에서 자주 맴돈다.

    

    그럼에도 흐른다는 것은 세계의 속성이다. 강민재의 그림은 이 세계에서 나뭇가지에 걸려 갈라진 물줄기 위에서 빙빙 도는 작은 나뭇잎이다. 흐르는 것들 사이에서 흐르지 않는 작고 너저분한 현재. 그림은 아무리 얇아도 현재에 있다. 이 그림의 시간 안에선 그게 풀이건 사람이건 같은 크기로 남아있다. 같은 크기의 붓질로 화면 전체를 채운다는 것은 어쩌면 영원히 머물지 않을 곳에 대한 잠깐의 애정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그림들은 투박하고 특별하지 않은 나뭇잎을 고르고 코팅해서 책 사이에 껴놓는 일과 비슷해 보인다. 썩어야 할 것을 반짝이게 하는 건 이게 조금이라도 더 오래 남아있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그럼에도 화면의 경계들은 작가가 영원한 것을 바라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벽은 그림이 더 이상 걸려있지 않아도 남아있다. 그리고 그림의 틈 사이로 보이는 벽은 굳이 이 사실을 상기시킨다. 결국 찰나를 그렸던 그림은 다시 찰나가 된다. 우리는 이런 시간들 속에 산다. 이 시간은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