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LJI-RO
안혜상 Solo Exhibition
<Night Walk>
06. Apr 2023 - 23. Apr 2023
안혜상의 회화적 리허설
안혜상은 본인이 일상 속에서 접한 다양한 신화들, 직접 꾸었던 꿈들, 현실의 경험들 등 과거시점에 벌어‘졌’던 이야기들을 창작의 소재로 삼는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를 그림으로 번안하여 어떤 서사적 맥락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눈 앞의 화면에 회화적으로 (재)배치하는 것이므로 이 이야기들은 그림의 ‘원문’이 아닌 ‘참조점’으로 불리워지는 것이 적합하다 생각된다. 그러므로 그가 참조점들을 ‘어떻게’ 다루고있는지를 보여주는 지점들, 즉, 그림에서 반복적/징후적으로 드러나는 형식적 특질들을 중심으로 작품들을 살펴보고자 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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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가 참조하고있는 이야기들의 특정 요소를 화면이라는 무대에 올린다. 무대미술이라기보다는 미술-무대에 가까운 상황이 펼쳐진다. 이 미술-무대를 구성하는 특징적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A. 빛과 공간
작품 대부분에서 보여지는 공간들은 실내보다는 야외로 보여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면을 비추는 빛은 자연광이라 볼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눈부신 태양, 불타는 노을빛, 은은한 월광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2 광원은 심야의 사건현장을 찍은 카메라 플래쉬나 길 잃은 야간 산행 중의 랜턴 빛과도 같은 느낌으로 화면의 전방에서3 다급하고 창백하게 상황을 포착한다. 그것은 마치 닫혀있는 무대 위의 좁은 영역을 집중해서 비추고 있는 인공조명이나 사진의 비네팅 효과처럼 강력한 집중을 불러일으키도 한다. 이런 연출은 화면을 바라보는 이의 시선이나 사고思考가 화면 바깥으로 나갈 여지를 차단한다. 이를 통해 안혜상의 화면 위에서 벌어진 사건은 그 사건 바깥의 맥락과는 단절된 고유한 현전성présence을 갖게 된다.
B. 색채와 터치
안혜상의 그림에서 색채의 운용은 재현적인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구분된다. 재현적인 색채는 주로 공간을 지시하는 기능으로 운용되는데, <헤로의 경우>에서의 바다, <잃어버린 대지>에서의 대지, <밤의 탄생>에서의 수풀이나 밤하늘이 이에 해당된다. 의미심장해 보이는 것은 비非재현적인 색체 운용이다. 화면 내의 상징적인 장치들이나 주제부의 인물들의 경우 지시하고자 하는 대상이 갖고 있는 고유색으로부터 일탈된 색으로 표현되곤 한다. 장치와 인물들4은 볼륨을 가진 대상이 아니라 외곽선으로 구획지워진 면面으로 다루어지고, 그 면의 내부는 대부분의 경우 불투명한 흰색(때로는 검은 색)을 포함한 색채들로 평평하게 처리된다. 색채를 덧바르는 터치 또한 볼륨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대상의 표면을 따라가기보다는 임의적인 방향으로 대상이 점유하고 있는 면적 위를 훑고 지나간다. 이러한 색채 운용에 집중하게 되는 이유는, 그것이 서로 다른 참조점에서 시작된 여러 점의 그림들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질이기 때문이다. 위 항목의 조명 효과와 더불어, 이 색채와 터치는 각 그림이 공유하고 있는 하나의 내적인 약속, 즉 회화적인 내재율로 작동한다.
C. 장치들
구현된 공간의 곳곳에서는 이러한 내재율로 표현된 상징적 장치들이 발견된다. 인물의 머리를 덮고있는 물고기 형태의 복식5, 맞잡은 두 손 위에서 말라가는 나뭇가지6, 벤치에 앉아있는 인물의 무릎 위에서 빛을 발하는 사물7, 모여 선 인물들에게 등진 채 바닥을 탐색하는 네발 동물8, 감은 눈의 눈꺼풀과 이마에 찍힌 수수께끼의 문자9 등은 강력하게 무언가를 상징하는 듯 하지만 그것이 지시하는 바는 부정확하다.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조건을 만족시킬 경우, 상징물은 기호로서 정확히 작동할 수 있다.
a. 특정 문화권에서 이미 성립된 상징의 의미가 명확할 때.
b. 전후의 서사적 맥락을 통해 특정 기호가 새로이 어떤 상징적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을 때.
하지만 안혜상의 그림에서 등장하는 상징(적 상황)들은 위의 그 어떤 경우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다만, ‘지금 이곳에서는 무언가 의미심장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불명확하고 암시적이지만 강력한 연출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것은 마치 브레히트 이래의 부조리극에서 쓰이는 불분명한 의미의 무대장치와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손가락이 달을 가리키는지 구름을 가리키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그 손가락 자체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다.
D. 인물들
위의 내재율이 적용되는 또 하나의 요소는, 거의 모든 그림에서 발견되는 명확한 주제부들이다. 주제부의 대부분은 인물이다. 이 인물들은 위에서 언급한 상징물들과 더불어 어떤 구체적인 상황을 강하게 환기하고있으나 우리는 이 무대 위에서 실제 무슨 일이 벌어지고있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다. 이야기가 아닌 어떤 ‘상태’를 관찰할 수 있을 뿐이다. 흙바닥에 널부러진lying 상태, 손을 맞잡은holding 상태, 화면을 향해 눈을 감은closed 상태, 물고기 가면을 뒤집어 쓴wearing 상태 등, 그 행위를 취하는 이유나 그 행위가 일으키게 될 결과를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인물들을 제시하는 이 방식은 인도/유럽 어족의 언어들에서 쓰이는 동사들의 분사participle적 용법을 떠올리게 한다. 사건의 전후 사정과 관련된 시점時點이 휘발되며 임시적으로 보이는 상태만이 남겨진다.
완고해 보일정도로 반복적인 이러한 화면 운용은, 안혜상의 그림들이 기반하고 있는 다양한 참조점reference들의 ‘내용’보다 더 중요한 회화적 논리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 논리는 상징과 사건들이 보여주는 임의적이고 임시적인 의미를 그 자체로 고정하는, ‘그리기’라는 행위의 본질에 맞닿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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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허설 장면을 재현했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화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 자체가 가지고있는 저 임의적이고 임시적인 상태를 고려하여, 안혜상의 행위를 <회화적 리허설>이라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연극의 ‘실황’이 아닌 ‘리허설’에 비유하는 것은, 그가 서사의 완결을 끊임없이 뒤로 유예하고있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의 어느 시점에 도래한 이야기를 참조하지만 미래의 어느 시점에 그 시나리오를 완결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영원히 완결되지 않을 어떤 이야기들이 그림으로써는 완결되어있는 이 역설적인 상황으로 인해, 그의 그림은 삽화적인 것과 구분되는 회화성을 획득한다. 디오니소스의 무대와 이카리 신지의 무대, 우르슬라의 무대와 보르헤스의 무대 사이 어딘가에, 안혜상의 미술-무대가 건설된다.10 그 무대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리허설은 귀가 찢어질 것 같은 묵음默音으로 박제되어있다.
안혜상은 이런 방식으로 시나리오를 버린다. 아니, 영원히 완결되지 않을 것 같은 태세로 버리고 있는 중이다. 아니, 버리고있는 ‘태세 그 자체’가 된 채 가쁘게 살아있다.
김동규 작가, 기획자
1 각 참조점reference들의 세부를 살펴보거나 참조점들간의 관계를 파악하여 그 의미망을 구성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시도일 수 있으나 여기서는 화면에서 관찰되는 형식적인 특질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2 <밤의 탄생>의 상단에 보이는 별빛의 경우도 자연광으로 화면을 지배하기보다는 ‘별빛'이라는 상징적 소재를 지시할 뿐이다.
3 그것은 그림을 그리며 화면을 조망하고있는 화가의 안광眼光일 수도 있고, 전시장에서 그림을 응시하고 있는 관객의 안광일 수도 있다.
4 C, D 항목 참조
5 <물고기 관리인>
6 <분사의 형태로 존재하는>
7 <마기>
8 <밤의 탄생>
9 <아테>
10 일반적인 무대들은 공연이 끝난 후 철거될 것을 전제로 가설假設되는 것에 반해, 안혜상의 미술-무대는 회화적 사물로 공고히 건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