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LJI-RO


송수영 Solo Exhibition

<젓가락 복음>

30. Oct  - 17. Nov 2019



젓가락 복음



어제와 같은 시각에 같은 건물에 들어선다. 아주머니가 걸레질을 하고 있다. 걸레가 지나간 자리에 물이 마르기도 전에 발자국이 찍힌다. 모니터를 바라보며 앉아있다가 시계를 본다. 초침은 바쁘게 한 바퀴를 돌아 다시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그렇게 빙글빙글 수백 번 돌고, 창 밖이 어둑어둑해질 때 건물을 나온다. 길에는 질긴 생명력 덕분에 가로수가 된 플라타너스 낙엽이 뒹굴고, 넥타이를 맨 아저씨들이 담배를 피우며 지나간다. 분식집에 들러서 김밥을 사서 나온다. 검은색 비닐봉지 안에서 김밥과 일회용 젓가락을 꺼낸다. 젓가락에 “행복하세요"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나는 이렇게 평범한 성인의 일과와 그 속에 자리한 사물들에 관심이 있다. 시계 바늘이 돌 듯 비슷비슷하게 무한히 반복되는 일들과 일회용 젓가락처럼 흔한 사물 말이다. 벤야민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우라’와 무관한 것들이다.

벤야민에 따르면, 아우라는 다빈치의 모나리자처럼 “지금 여기”에서만 존재하는 유일무이한 원본의 “일회적 현존성”에서 온다. “어느 한 순간”의 “일회적” 경험에서도 아우라를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별똥별을 보는 것과 같이 특별한 상황 말이다. 즉 아우라란 “특별한, 유일무이한, 생생한 것 vs 흔한, 대체 가능한, 무미건조한 것”의 대립 구조에서 전자에 해당한다. 벤야민은 오늘날을 “기계복제시대”라고 부르며, 이 시대의 경험이 전자에서 후자로 대체되었다고 말한다.

내가 관심 있는 평범한 일과와 사물은 이렇게 아우라가 없어진 시대의 전형적인 경험과 사물이다. 이들은 벤야민의 아우라 개념과 조목조목 반대되는 성격을 지닌다. 일회용 젓가락은 태생적으로 원본이 없고 유일하지도 않으며, 아무 때나 계속 만나고, 얼마든지 다른 것으로 대체 가능하다. 우리의 일과는 지속되고 반복되는 경험으로 채워진다.

벤야민은 아우라의 붕괴를 반겼지만, 아우라의 경험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본 것은 아니다.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자연적 대상의 아우라를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것의 일회적인 현상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