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LJI-RO


최인아 Solo Exhibition

<Slippery Night>

24. Jun  - 12. Jul 2020



Slippery Night



나의 작업은 신화 속 장면이나 신화적 메타포로 확장 가능한 일상적 순간에서 시작한다. 신화적 이야기에 등장하는 변용된 시각적 요소들 - 머리, 우물, 동굴 등 - 은 변화가 진행되는 공간, 혹은 과도기적 상태에 있다는 점에서 나의 그림의 출발점이 된다. 특정 장면이 상상력과 결합되어 구체적인 계획 없이 화면 위에 물성, 형태, 색으로 옮겨지며 작업의 과정이 시작된다. 매체가 갖고 있는 각기 다른 텍스쳐들은 서로 뒤섞여 기존의 이미지에서 벗어난 회화적 장면을 연출한다.

이미지가 형성되기 위한 모든 결정은 색과 형태, 질감 등의 회화적 관계에 기반한다. 현실의 사물 혹은 풍경을 암시하는 모호한 형태들은 대비되는 색감의 면, 선들의 중첩으로 캔버스 평면 위 실제적 공간으로 다시 돌아간다. '부드러운' 기하학적 형태들은 환영적 공간을 만들어내지만 동시에 표면 위의 물성으로 보여지고, 그림 속 곳곳에 등장하는 형상적 요소들은 구상도 추상도 아닌, 정체되어있지 않은 화면을 만들어낸다. 수많은 면과 선들이 중첩되어 만들어진 형태는 그려지고 지워지고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서사가 이미지로 옮겨지고 동시에 이미지가 새로운 서사를 보여주는 유기적이고 즉흥적인 회화적 과정의 반복을 통해 그림은 완성된다. 작품이 만들어지는 시간 동안 생각은 계속해서 변하고 그에 따라 회화적 결정도 시시각각 달라진다. 화면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미끄러지며 결정지어지지 않은 끝을 향해 나아가는 현재에 위치한다.





글. 최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