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LJI-RO


김윤아 Solo Exhibition

<꽃이지니몰라보겠다>

11. Jun 2022 - 4. Jul 2021





떨어지는 너의
비명과 신음 사이에서.

반듯하게 붙어 있는 무엇이면 좋겠다.
쇼윈도우에 잘 진열된 빛이 나는 상품이면 좋겠다. 감정이 메말라서 그대로 꽂혀 있는 막대기이면 좋겠다.

여기,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무엇을 욕망했지만 사실은 가 닿은 적 도 없는 조각들을 수집한다. 그녀는 그것들을 문대고 문대, 빨고 빤다. 그것이 태초에 무엇을 욕망했었다는 사실조차 잊을 만큼. 그녀는 기어코 그렇게 너의 색을 아무도 몰라보는 무채색으로 만들 어 버린다. 하지만 그 조각들은 그 와중에도 자신들에게 어떤 의미 가 남았는지, 그녀에게 복종하지 않는다. 그렇게 제각각 사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욕망을 꿈틀거린다. 처량했던 것일까? 그녀는 그것을 아주 소중하게 담아, 곱디고운 접시에 담는다.

김윤아 작가는 패브릭 천을 소재로 다양한 작업을 진행해 왔다. 그동안은 커다란 천 덩어리를 이용해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는 가 하면, 부드럽고 축 처진 질감을 이용한 설치작업을 해왔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헌 옷의 소매 부분을 본격적으로 사용하여 오브제를 만들어낸다. 누군가에게 손짓하였던 가장 끝, 가장자리. 욕망했던 것을 가졌을 수도 혹은 놓쳤을 수도 있던 욕망의 가장자 리. 그 애썼던 흔적만이 남아있는 소매 조각들은 이제 누군가에게는 잊혀지고 누군가에게는 폐기되어, 작가에게 흘러들어 왔다.

작가는 흘러들어 온 소매에서 아직은 사라지길 거부하는 욕망의 자국들을 집요하게 찾아낸다. 그것들은 발악하거나 낑낑대거나 사실은 비명 지르고 있을 지도 모른다. 어떻게 표현되어야 할지 못한 그 감정의 덩어리들은 치덕치덕 응어리가 쌓여 성을 이룬다. 작가의 의도했거나 의도하지 않았거나 그것들은 스스로 소리 지르 며 ‘자기가 거기 있다’는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구체적인 언어로 환원되지 못한 어떤 것들. 정리되거나 세상의 잣대에서 빗겨난 어떤 것들. 그렇지만 분명히 거기 존재하고 있는 것들.

작가는 그 모습을 단단한 것으로 만들어 내는데, 사실은 ‘단단하다’ 보다는 ‘단단해 보이는 것’이다. 부드러웠던 소매들을 완벽하게 굳 혀 내는 것이 아니라, 하얗고 매끈하게 얄팍한 껍질을 만들어 주었 다. 우리가 가끔 멋진 가면을 쓰는 것처럼. 그렇게 실패를 간직한 어떤 것들에게 김윤아 작가만의 방법으로 세상과의 화해를 권한다.

김윤아 작가의 감정의 조각들이 이번에는 상업화랑(서울)과 협업공 간_한치각(경기도 평택시)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난다. 서울의 조각은 <꽃이 지니 몰라 보겠다>, 평택의 조각은 <못 된>이다. 어쩜 아픈 단어들만을 골라 제목으로 정했다. 몰라보거나 못 되거나 나쁘 거나. 이것들은 서로 이어지기도 하며, 사실은 완전히 다르기도 하다. 을지로(상업화랑)와 미군부대 앞(한치각)이 함의 하는 것이 다르듯이. 꼭 서울과 평택의 간극을 사유해보길 제안한다. 김윤아 작가의 이번 작품이 세상과의 단절을 원하는 것일지 혹은 새로운 이음의 시작이 될지는 관람객의 몫으로 남겨둔다.






글. 이생강 (협업공간 한치각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