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NGSAN

정이지 Solo Exhibition

<My Salad Days>

03. Dec 2021 - 16. Jan 2022 

컷-업: 

나의 풋내기 시절은 끝났어!


- 정이지 개인전 《My Salad Days》 -





   그 해 여름은 조금 특별했다. 대단하거나 화려하지도 않고 소박하게 잠시 머리를 식히러 지인이 거주하는 시골로 휴양을 떠났다. 휴양이라 하기에 초라하다. 여느 시골집처럼 낮은 슬레이트 지붕의 숙소는 수수하고 정갈했다. 뜨겁게 이글거렸던 여름, 때마침 첫 날에 비가 우수수 내려 숙소 밖을 나가지 않았다. 무언가를 해야 하는 부담과 강박에서 벗어나 통제할 수 없는 날씨에게 내심 고마웠는지 느슨한 마음으로 게으름을 피워 보기로 했다. 책 몇 권을 챙겨 갔지만 그 마저 늑장 부리며 마루에 앉아 따끈한 고구마를 까먹고 아무 것도 하지 않기로 마음 먹어본다. 가볍게 스케치할 도구도 챙겨갔지만 몇 번 끄적거리다 포기한다. 내리던 비가 그치고 해가 뜬 이후에 근처 수목원을 어슬렁거린 것 말고는 무엇도 하지 않은 짧은 휴가. 높아진 습도와 함께 시간을 죽이는 사치를 부려보는 것에 달콤한 평화를 누리면서 불현듯 현기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의 풋내기 시절의 한 해가 또 지나가는구나!’


   전시 《My Salad Days》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Antony and Cleopatra)』(1607)의 문구 “Oh, My Salad Days!”에서 가져온 것으로, 찬란했던 풋내기 시절이 흘러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이다. 셰익스피어가 ‘경험’이라는 것의 맞바꿀 수 없는 가치에 대해 사유했던 것처럼, 풋내기이기에 어떤 경험이든 누릴 수 있는 어수룩한 시절은 불안정하지만 매력적이다. 무수한 상처를 안고 다시 아무는 과정을 반복하는 불안한 풋내기의 시간들은, 한편으로 인생의 다음 챕터를 기대하게 되는 아슬아슬한 시간을 통과할 수 밖에 없는 따끔거리고 짠맛 나는 순간들일 것이다. 흥미롭게도, 소금을 의미하는 ‘Sal’에서 유래한 샐러드의 어원이 곧 찬란한 순간과 경험에 소금을 치듯이, ‘젊은 시절’의 멜랑콜리와 감질나게 찾아오는 행복의 눈물을 끝없이 정제하는 과정이라 비유해본다. 그리하여, 정이지의 두 번째 개인전인 《My Salad Days》는 찬란한 젊음의 쓴맛에 비유한 자신의 일상과 추억을 파고들어 작가 스스로가 내부자이자 동시에 관찰자가 된 순간의 회화적 기록에 관한 것이다. 


   본 전시는 작가가 시간의 단위들에 주목하여 흩어진 시간의 가장 작은 입자를 감각하는 추억을 파편적으로 선택한다. 전시의 주요 작업인 흑백의 두 회화 <우주를 보고>(2021)와 <한 알의 모래알에서>(2021)는 두 점이 하나의 묶음이 되어, 대상을 시간의 입자로 바라보려는 작가의 태도가 캔버스 크기와 제목을 통해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난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순수의 전조(Auguries of Innocence)」(1863)의 첫 구절 “모래 한 알 속에서도 세상을 보며(To see a World in a Grain of Sand)”에서 비롯된 <한 알의 모래알에서>는 모래 한 알 속에 고스란히 축적된 시간의 단위에 대한 은유로 가장 하찮고 사소할 수 있는 일상에서 자신을 투영하려 한다. 작가가 밤이라는 시간과 흑백 초상의 풍경화와 인물화를 엮은 두 작업은 느슨하면서도 간결하게 대상을 클로즈업 한 것으로 상대적으로 함축적이다. 작은 프레임의 연필 드로잉에서부터 시작된 <우주를 보고>에서 시원하게 그려낸 야경 사이에 번지는 빛의 형태는, 기존에 보여줬던 풍경화와 다르게 어둠과 빛이라는 비물질의 형태에서 오는 강한 대비의 감각 자체에 집중한다. 이는 풍경을 재현하는 방식이 사실적인 기록이었던 것에 비해 풍경을 재현하기 위한 요소들이 탈락되면서 그림자와 빛만 남았다. 캔버스 표면 위에 얇게 얹혀지는 인디고와 세피아, 페인즈 그레이 등 붉은 갈색과 보랏빛이 도는 진회색 물감으로 어둠을 표현한 검정이라는 이름은 확대된 풍경이 추상적으로 모호해지면서 실루엣의 장면을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러프한 붓터치와 뒤섞여 화면 위를 구축해 나가는 밤 풍경과 파악하기 어려운 표정의 초상은 확대와 같은 화면 전개를 통해 어떤 긴장 상태와 그 이면에 대한 상상을 극대화 시킨다. 


   정이지의 회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존재는 무심한 듯 그 곳에 머물러 있다. 대상과 함께 있던 시간과 같이 머물던 공간이라는 인물 주변을 어디까지 화면에 담을 것이냐에 대한 매순간의 선택은, 인물 자체에 무게를 두거나 장소가 담고 있는 독특한 구조와 분위기로 시선이 확장되는 방식(베이스 레슨, 2021)으로 나아간다. 그에 따라 인물을 내면화 하여 대상에 대한 가능성을 관찰자에게 열어 두거나 사적인 기록으로서의 성격이 강해지는 등 작업에 방향성이 조금씩 다른 형태로 재구성된다. 이처럼, 작가가 캔버스에 대상과 주변을 담는 방식에 따라 작업 전반에서 자신의 회화가 지속적으로 읽혀졌으면 하는 방향에 대한 고민들이 묻어난다. 관찰자로서의 우리는 사용하는 색과 화폭 위에 담는 대상에 몰두하기 십상인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이지가 선택하는 장면들은 프레임 안에 특정 상황으로서 하나의 ‘컷’으로 접근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캔버스 화면이 만화적 관점에서 이야기를 연결해 주는 여러 개의 프레임 컷들 중 하나와 동일하다면, 스토리텔링의 방식과 자유도가 작가의 회화적 언어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만화적인 기법 중 하나인 프레임 내에 장면을 포착하는 방식에 주목하는 작가는, 시간의 흐름에서 앞 뒤로 탈락되는 와중에 이해하기 쉽고 가장 압축적인 정제된 순간으로 명료하게 보여주는 형식을 따른다. 


   분절된 시간 안에서 형식적으로 해체되는 ‘컷’의 전달 방법은 결국 대상의 상태, 존재, 혹은 기억이나 다가올 것들을 상상해보게 되는 시간의 흐름 안에 한 순간을 담는데 있다. 이같은 매력에 주목해 자신의 회화를 기록의 태도로 끌고 가는 작가는 마치, 텍스트를 잘라내어 새로운 텍스트를 만들기 위해 재배치하는 ‘컷-업(Cut-up)’ 기법처럼 기억의 이미지들을 테두리가 제거된 회화적 기법으로 전환한다. 특히, 윤곽선을 포함하고 있는 ‘카툰 프레임’을 둘러싼 안전한 영역과 달리, 작가는 테두리를 제거하고 박제된 화면 자체로서 전후로 당시의 감각들을 상상할 수 있도록 추억해내는 가능성들을 열어둔다. 그는 대상이 자신한테 다가왔던 정서를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방식을 고민하게 되면서, 가감없이 쏟아 내는 아마추어적인 만화들의 기법을 수용하고, 완벽하게 정돈된 만화적 문법을 익히는 것보다는 풋내기로서 감각할 수 있는 컷의 방식을 선택하게 된다. 나아가, 인물에는 윤곽선이 부각되고 배경으로서의 풍경과 정물(시집과 택시, 너의 이름, 눈인사, 테라스, 2021)은 윤곽선 없이 사실적으로 명암 처리되어 둘 사이의 괴리가 발생한다. 만화적 태도의 이같은 괴리는 오히려 인물에 몰입하도록 하는 모순된 방식으로 화면이 채워진다. 


   정이지의 회화에서 과감한 컷의 구현은 개인의 기억과 경험을 환기시키면서 동시에, 그림 밖에 있는 관찰자의 시선의 위치를 결정한다. 우리 각자가 느끼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사소한 순간들은 종종 당시에 머물던 공기의 밀도와 누군가의 체취와 섞인 주변의 냄새, 날씨, 그곳에 놓여있던 사물, 풍경, 그리고 옆에 있던 사람과 함께 잔잔하게 머물게 된다. 그리하여 찰나의 순간에 대한 고민들은, 너무 빠르게 지나가버리는 자신의 풋내기 시절에 대한 아쉬움과 소중함, 허망함, 그리고 애틋한 감정들의 소용돌이 속에 가장 평화로운 순간을 기록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작가가 안고 있는 헛헛한 마음이 한 화면에서 한 큐에 끝나버리는 듯하지만, 이야기의 흐름 안에서 탈락된 주변의 다음 행간을 상상할 수 있도록 여운을 남겨두므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달랜다. 이렇듯, 반복되는 일상의 루틴에서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순간들은 종종 쉽게 휘발되어 버린다. 허공에 사라지는 기억의 감각들을 붙잡으려는 정이지는 <소원의 모양>(2021)에 각양각색의 소원탑 돌들처럼, 느슨하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자신의 다음 챕터에 대한 기대와 의지의 여운을 남긴다.  


글. 추성아, 독립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