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LJI-RO


이종환 Solo Exhibition

<Cabinet>

17. Jan 2023 - 31. Jan 2023


 

사진술의 발명은 예술의 표현 방법을 변화시켜왔다. 에드워드 제임스 마이브리지(Eadweard James Muybridge)가 달리는 말의 움직임을 촬영한 <The Horse in Motion, 1878>는 인간의 눈으로는 포착할 수 없었던 말의 네 다리 위치와 형태를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게 했다. 이는 회화가 가진 기록이라는 속성을 사진이 양도받게 된 중요한 사건이다. 이를 기점으로 회화는 기록의 역할로부터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다양한 표현과 경향들을 만들어냈다. 전통적인 회화에 담겼던 물리적 시간과 형상은 심리적인 시간과 형상으로 변모하고, 사진은 전통적인 회화가 담았던 것들을 떠안게 되었다. 하지만, 사진은 이내 새로운 조형 언어를 가진 예술이라는 또 다른 방향을 모색하였고, 기록으로서의 사진과 예술로서의 사진으로 나뉘었다. 예술로서의 사진은 다양한 투쟁의 역사 속에서 예술의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반면에 기록으로서의 사진은 어떤 궤적을 보여주는가? 기록의 속성을 물려받은 사진은 수없이 많은 변화와 기술 발전으로부터의 의심 속에서도 기록의 측면에서 그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오늘날 예술 작품들을 기록하는 방법으로 대부분 사진을 선택한다. 회화의 경우 더욱 그렇다. 사진으로 기록된 예술 특히, 회화는 기록으로서의 사진으로부터 충만함을 가지고 있을까. 사진은 회화를 기록하는 방법으로서 역량을 다하고 있을까. 그 틈은 벌어졌고(이전부터 벌어져 있었고), 틈이 만들어낸 공허는 새로운 코킹(caulking)재를 요구한다. 새로운 기록의 방법, 보충될 수 있는 기록을 주문하고 있다.

무척추동물의 탈피와 허물은 그 공허가 무엇인지 그리고 틈을 메꾸어줄 코킹재에 대한 힌트를 제공한다. 허물(exuviae)은 탈피의 과정에서 동물의 관련 구조를 여전히 부착한 채로, 벗겨진 외골격의 잔해이자 흔적이 된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껍질 혹은 잔해가 아닌 표면 혹은 피부 깊이 이상의 것이다. 일정한 시간 동안 외골격과 표피 사이의 틈을 채우며 그것들이 가진 구조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렇기에 허물은 사진이 메우지 못한 기록의 틈을 보충할 가능성과 그 방법을 암시한다. 탈피의 잔해는 연구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용도로 이용된다. 남겨진 허물은 종(species)을 관찰하는 귀중한 자료인 동시에 기록으로서 기능한다. 편집되지 않은 실제 크기와 두께, 굴곡을 측정할 수 있게 한다. 이는 사진이라는 기록을 통해 분석하고 관찰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나 있다. 사진은 카메라를 매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빛을 통해 대상의 형상과 색채를 담아내는 반면, 허물은 대상과 거리를 두지 않고 맞닿은 상태에서 물리적 구조, 굴곡, 내재된 정보와 같은 표면 이상의 것을 담아낸다. 이렇듯 새로운 가능성으로서의 기록법은 회화를 촬영한 사진이 담아내는 이미지의 윤곽과 색채의 표면이 아닌, 그 이상의 구조와 내재된 정보를 담아내 보여주어야 한다. 물론, 회화에 대한 기록의 틈을 새로운 기록법이 완전히 메우진 못할 것이다. 반투명하고 무채색에 가까운 허물을 보고 그 동물의 색과 다양한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형태를 유추할 수 없듯이, 새로운 기록 법은 회화의 또 다른 틈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기록법의 부상은 공고해 보였던 기록으로서 사진의 위치를 잡아당길 것이고, 각각이 가진 공허한 간격을 채워나가며, 기록 자체에 대한 사유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종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