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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 작업실 탐방 (1) 뿌리 & 이현우 & 유지오

다양한 매체를 기반으로 작업하고 있는 뿌리, 이현우, 유지오 작가의 작업실(Pippurio)은 문래동 우체국 뒤쪽의 좁은 골목길에 자리해 있다. 각자의 개성이 어우러진 세 작가의 공간에 방문해서 문래동과 작업에 관한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Pippurio 작업실 (문래동2가 14-74)

Q. 세 작가분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어떤 일들을 해왔고,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요?

뿌리(안태원, 이하 뿌)

안녕하세요. 저는 뿌리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안태원입니다. 현재 에어브러쉬를 활용한 평면 작업을 주로 하고 있어요. 익숙함으로 가득한 공간을 벗어나 본능적으로 느끼는 불안함이 제 그림의 원동력입니다. 애니메이션의 극 중 상황묘사 또는 SNS, 인터넷상에 떠돌아다니는 출처 불분명의 이미지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상황의 인과관계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 이미지는 ‘어디서? 누가? 왜?’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짐작하기 어려워요. 이건 제가 가진 상식 밖의 일입니다. 상식이란 종이 한 장 차이로 굳어진 사고의 틀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런 이미지들을 볼 때 위화감이나 언캐니함을 느끼는 게 아닐까요? 저는 이런 것들에 집중합니다.

한편으로는 제 그림이 서사적이거나 동화적인 느낌을 준다고 볼 수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반-동화적, 반-서사적 이미지를 생각하며 작업하고 있습니다. 배치되는 이미지 간의 서사적 구조보다는 우연성에 초점을 맞춰요. 아예 의도를 배제한다기보다는, 작은 연결고리 정도를 염두에 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평면 작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만, 만들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매체를 가리지 않습니다.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입체작업 등 최근에는 신생 브랜드와 그래픽 콜라보도 진행했고요. 재미있게 살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노력한다는 점에서 재미있게 살기는 그른 것 같기도 합니다. 정말 재미있게 사는 사람은 타고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도 노력 중입니다.

뿌리, <Can you see me>, 45x45cm, 캔버스에 아크릴, 2020

뿌리, <천하대장군>, 213.5x100cm, 캔버스에 아크릴, 2021

이현우 (이하 이)

안녕하세요, 이현우라고 합니다. 저는 현재 조각이라는 방식으로 사물에 규정되고 명명된 기능, 의미, 기준들을 걷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의 결과로 물질성만이 드러나는 이미지를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방식의 작업은 어떤 대상을 바라보는 제 태도와 관련이 깊어요. 저는 무언가를 정의 내리고 판가름하는 특정한 기준을 마주할 때 터무니없고 막연하단 생각이 자주 들어요. 예를 들어 선-악을 나누는 기준이라든가, 의자나 변기의 정해진 용도라든가. 뜬금없지만 ‘외계인이 지구에 와도 사물의 용도를 단번에 파악해 그대로 사용할까?’와 같은 상상을 종종 해봅니다. 저는 외계인은 아니지만, 사물을 있는 그대로의 상태로 바라보고 싶어요. 어떤 상황이나 대상에 의해 소모되지 않고자 하는 데에서 비롯된 나름의 방어기제 같기도 합니다. 이런 태도로 사물을 바라보다 보니 물질성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제 작업을 조각이라 말하는 것도 마땅치 않다는 생각에 개인적인 정의도 마련해 보았어요. 저에게 조각은 “규정되거나 명명되지 않는 물질의 이미지화”입니다.

이현우, <untitled>, 150x150x180cm, 적삼목, 거위날개, 알루미늄, 2020

이현우, <untitled>, 40x40x90cm, 알루미늄, 종유석, 크리스탈볼, 스텐 전산볼트, 스텐 너트, 2021


유지오 (이하 유)

안녕하세요. 유지오라고 합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한 후 작업을 다시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았어요. 꽤 오랫동안 쉬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 시간 동안 작업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습니다. 평면 작업을 해오다 입체작업으로 넘어오면서 갈피를 잡지 못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동력을 활용하여 순환하는 듯한 형태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해왔는데요, 움직이는 것들이 생산해내는 에너지와 그것들이 서로 충돌하며 제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에 매력을 느낍니다. 최근에는 그 움직임에서 파생되는 이미지의 파편들을 재조합하여 하나의 이미지로 만드는 작업을 해보려 노력 중이에요. 그리고 작업에 좀 더 조각적인 요소를 가미해보고자 합니다.

유지오, (↔), 가변크기,각파이프, 로프,모터,알류미늄 사슬, 2018.

유지오, ↕, 가변크기, 아크릴, 철, 쇠사슬, 호스, 호스밴드, 수중모터, 2021

Q. 세 작가의 작업실은 언제, 어떻게 결성되었나요? 셋의 특정한 공통분모나 차이점이 있다면?

이)  작년 가을에 작업실을 급하게 구하는 과정에서 제가 뿌리를 섭외했어요. 평소 뿌리의 그림을 좋아하기도 했고, 작업을 대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어요. 서로에게 없는 다양한 기술을 갖고 있으니 둘이 뭉치면 두 배가 아니라 그 이상이 될 것 같았고요. 이후에 저의 전 작업실 멤버인 유지오 작가도 합류했습니다. 셋의 뚜렷한 공통분모는 출신 학교예요. 개인적인 견해지만 동대학 출신 작가들의 작업을 보면 테크니컬하다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저희 셋도 기술적인 부분이 요구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차이가 있다면 각자 조각, 설치, 회화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에요. 작업에 접근하는 데에 있어 각기 다른 방식을 추구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뿌)  셋이 사용하는 매체와 작업의 방향은 다르지만, 담론을 쌓아서 작업을 풀어내기보다 직관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지점을 공유하는 것 같아요.

Q. 같기도, 다르기도 한 세 작가가 한 공간에서 작업하며 얻는 시너지가 있을까요?

뿌)  저는 평면을 주로 다루기 때문에 항상 네모 캔버스에 페인팅을 해왔어요. 그런데 두 작가와 함께 작업실을 쓰면서 입체적이고 다양한 형태의 조각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공구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어요. 자연스럽게 다른 모양의 캔버스 제작을 시도하거나, 막연한 상상으로 머물렀던 것들의 구체적인 견적도 낼 수 있게 되었고요. 이런 부분이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  저는 여러 명이 함께하면서 혼자 작업할 때보다 훨씬 더 효율적인 루틴을 만들 수 있었어요.

 

이)  작업 과정에서도 서로 도움을 주고받다 보니 훨씬 섬세한 작업이 가능해요. 이 공간을 오고 가는 서로의 지인들과 만나면서 다양한 피드백을 받게 되는 것도 좋은 점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셋은 작업에 들어가는 패턴이 다 다른데요, 뿌리는 쉬지 않고 다작하는 스타일인 반면 저는 이미지를 오랫동안 세세하게 구상한 뒤 한 번에 작업을 실행하는 편이에요. 나와 다른 방식을 통해 작업을 일구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새로운 자극도 받고, 더 부지런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뿌) 공감하는 부분이에요. 그동안 저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생산하는 일에 집착하고 있었는데, 두 작가의 작업 과정을 보면서 고민하는 시간의 필요성을 느끼기도 했어요. 원래의 방식이 잘못되었다기보다는 다른 방식의 이점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달까요. 예전에는 하루라도 작업실에 나와서 뭔가를 그리지 않으면 불안했는데, 이제는 좀 더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의 여유도 갖게 되었어요.

Q. 이태원, 망원, 을지로 등 미술계에서 활동 중인 작가들이 군집하여 작업실을 꾸리는 몇몇 지역들이 있습니다. 문래동 역시 그중 한 곳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이곳에 작업실을 마련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문래에서 작업하는 것의 장단점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이) 문래동에는 철공소, 주물집, 선반 가공 등 다양한 공장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요. 작업실을 문래에 마련한 이유 또한 이 공장들 때문인데요, 조각에서 많이 다루는 목재, 철재 등의 자재들을 1km 안에서 전부 구할 수 있고, 작품 제작 과정과 관련한 자문을 구할 수도 있어요. CNC 재단과 레이저 컷팅이 가능한 재단 공장이 많다 보니 모든 공정 과정이 문래에서 이루어집니다. 구로 공구상가가 가까워서 을지로나 종로까지 가지 않고 재료를 구할 수 있기도 하고요. 저에게 문래동만큼 작업하기 편한 곳은 없을 것 같아요. 단점이 있다면 노후화된 건물과 화장실입니다.

 

유) 저도 비슷한데요, 문래에서는 작업에 필요한 기술적인 문제들을 바로바로 해결할 수 있어요. 덕분에 근처 사장님들에게 기술에 대한 노하우나 작업 과정의 단순화 방법 등을 배우고 있기도 합니다. 여러모로 장점이 많은 곳인 것 같아요.

 

뿌) 저는 에어브러쉬를 사용하면서 나오는 분진이 작업 과정의 가장 큰 문제점이었는데요, 작업실이 원래 도색공장으로 활용되었던 곳이라 환풍시설이 굉장히 잘되어 있어요. 문래에는 공장이 많다 보니 아마 대부분의 공간들이 환풍시설을 잘 갖추고 있을 거예요. 제가 작업하기에는 정말 좋은 환경인 거죠. 두 작가만큼은 아니지만 문래에 있는 CNC 공장을 활용하고 있기도 해요. 모양 캔버스를 제작하는 부분에서도 그렇고, 최근에 평면을 벽에서 멀어지게 하는 입체적인 디피 방식을 고민하게 된 것에도 이런 주변 환경의 영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Q. 문래동은 다양한 직업군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띠고 있습니다. 좁은 골목마다 숨겨진 맛집이나 다양한 문화공간도 자리하고 있는데요, 소개하고 싶은 장소가 있다면?

이) 소개하고 싶은 맛집이 몇 군데 있어요. 문래동 2가에 위치한 ‘골목집’은 오리감자탕을 파는데, 독특한 맛이 있습니다. 매체에도 몇 번 소개됐어요. 그리고 ‘잠수교집’! 여기 냉동 삼겹살과 푸짐한 상차림은 정말 최고예요. 그리고 ‘모아다방’의 시원한 칡즙도 추천합니다.

 

뿌) 저는 ‘왕대박식당’을 소개하고 싶어요. 역시 문래동 2가에 있는 백반집인데, 정말 맛있어요. 반찬이 많이 나오고 서비스도 좋아요. 문래에는 공장을 운영하시는 분들이 편안하게 식사하기 좋은 백반집이나 가성비 좋고 맛도 겸비한 맛집들이 꽤 있어요. 문래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작업하는 사람으로서 좋은 점인 것 같습니다.

Q. 팬데믹이 선언된 지도 벌써 1년 남짓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대부분의 활동을 비대면으로 전환하고, 실내에 출입할 때마다 신원 확인을 하는 등 일상의 많은 부분이 변했고, 어느새 익숙해진 모습에 놀라기도 합니다. 전시를 비롯해 주로 물리적인 매개를 기반으로 하는 시각예술 활동에도 크고 작은 변화나 제약이 있었는데요, 작업을 이어나감에 있어 코로나로 인한 여파를 실감한 적이 있나요? 팬데믹 이후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이) 아직 코로나로 인해 작업이나 전시에 제약을 받은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모두가 그렇겠지만 마스크를 쓰고 일상생활을 하며 느끼는 답답함이 크고, 활동에 제한이 있어 심리적으로 예민한 상태를 제외하면 크게 힘든 점은 없습니다.

 

뿌) 최근에 코로나가 끝나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요, 저 또한 원래 작업실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일상적인 것 외에 큰 영향을 체감하지는 못했습니다.

 

유) 저는 다른 곳을 나가기 힘들다 보니 오히려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어요. 별개로 코로나와 관련하여 드는 우려가 있는데요, 팬데믹 상황에 적응해나가는 과정에서 온라인상의 이미지가 엄청난 속도로 소비되는 것에 대한 걱정입니다. 예를 들어 현우 작가의 작품이 인스타그램에서 여러 번 리그램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스토리’ 기능을 통해 24시간이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이미지를 보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이러한 상황이 코로나 때문에 더 급작스럽게 전개되어 몸살을 앓게 되진 않을까 하고요. SNS나 온라인 기반의 시각예술 활동으로 인해 전시나 작업의 이미지가 점점 더 가벼워지고, 일회성으로 그치고 마는 부작용이 발생하지는 않을까 싶어요.


Q. 지오 작가님이 말씀하신 것 외에도 코로나 이후 대안적인 온라인 활동들이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이러한 양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저는 작년에 3D로 구현한 온라인 수장고 전시를 보았는데요, 실재를 마주하는 것만큼의 효과를 만들어내기에는 아직 기술적인 한계가 있음을 느꼈어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작품을 보는 느낌을 받기도 했고요. 그래서 이러한 활동들이 기존에 물리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던 전시를 아예 대체할 수 있는 완벽한 대책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전시 형식의 하나로 다가왔습니다.

 

유) 당장 실제 전시 공간에서의 활동이 어렵게 된다면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하는 전시 형태이긴 하지만, 아직은 특별한 이벤트처럼 느껴져요. 미술이 어떤 대안적인 방법을 마련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 계속 고민해 나가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Q. 올해의 활동 계획이나 목표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이) 4월에는 뿌리, 유지오 작가와의 단체전이 계획되어 있어요. 각자 맡은 바를 열심히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6월에는 첫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올해 목표는 지금보다 더 나은, 좋은 작업을 해내기 위한 개인적인 발전입니다.

 

유) 당장 코앞의 일정은 작업실 멤버들과의 단체전인데요, 전시 시작까지 얼마 남지 않아 셋 다 발등에 불이 붙은 상태입니다. 작업에 있어서는 아직 배워나가는 단계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꾸준한 작업을 통해 점차 발전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뿌) 최근에는 네모 캔버스를 벗어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어요. 앞서 말씀드렸듯 CNC로 나무를 재단해서 캔버스를 커스텀하기도 하고요. 앞으로 평면과 입체를 접목시키는 지점을 천천히 탐구하고 실행에 옮겨나가고자 합니다. 개인 작업뿐 아니라 상업적 콜라보도 계속 진행할 예정이에요. 애니메이션이나 그래픽작업 등, 개인 작업과는 또 다른 모습의 나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4월 2일부터 시작될 저희 셋의 전시를 무사히 마치는 것이 작은 목표입니다.


인터뷰 진행/글  김소희 (상업화랑 전시기획팀)

사진 김채원


✧4월 2일부터 L.A.D에서 시작될 세 작가의 전시 《Stuck》의 정보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lovealcoholdeath.com/%EC%98%88%EC%A0%95%EC%A0%84%EC%8B%9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