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문학 온 스테이지(On Stage)
작가(writer)와 작가(artist): 한국문학으로 시각예술 구연하기

문학 온 스테이지 (On Stage) 프로그램 소개

상업화랑 기획 문학 온 스테이지 (On Stage) 프로그램은 글과 이미지, 큐레이터와 예술가, 작가(Artist)와 작가(Writer) 의 관계를 고찰해본다. 김인환 산문집 『타인의 자유』에서 출발하여, 회화와 설치작업을 하는 김지민 작가와 김성희 기획자는 글과 이미지에 대한 대담회와 낭독회를 진행했다. 최종 결과물인 대담회와 낭독회는 영상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또한 아트시(Artsy)의 문학 온 스테이지 연계 온라인 전시를 통해 김지민 작가의 신작을 만나볼 수 있다.



2. 문학비평:『타인의 자유』


시는 나에게 누벨바그 영화와 같은 존재다. 모두 열광하고 음미하는데 나는 열광을 거쳐 음미하는 데에서 항상 머뭇거린다. 무엇을 음미해야 하는가? 단어나 장면이 예뻐서 맛있는 음식을 탐하듯 맛을 볼 수는 있지만 꼭꼭 씹고 되새길만한 거리는 찾지 못했다. 시 역시 마찬가지다. 두고두고 시 한 편을 품고 산다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문학을 전공했다는 자부심에 포기하지 않고 포, 워즈워스, 보들레르와 랭보까지 간간히 읽어봤지만 순수하고 온전한 애정이 생기진 않았다. 나는 텍스트 안에서 이야기를 원했고 교훈을 원했지만 시는 그저 감상적이고 감각적이었다. 마음 놓고 글자만 따라가다 보면 어느 지점에건 일단 도착하는 소설에 비해 시는 목적지 없이 떠도는, 어쩌면 도달할 수 없는 곳을 향해 가는 항해였다. 그렇게 헤매던 중 시를 향한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계기가 찾아왔다.


김인환 교수는 『타인의 자유』 「황현산의 산문: 비평의 원점」에서 ‘시쓰기는 감각활동이지 사유활동이 아니’라고 말한다. 시를 쓰는 행위가 감각활동이라면 읽는 행위 역시 감각활동이다. 감각적인 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데 그 안에서 깊은 의미를, 이야깃거리를 찾으려 했기에 시를 음미하고 흡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책의 첫 번째 장「독서의 가치」에서 말하는 ‘맥락’의 독서가 여기에서도 통한다. ‘이분법적 사고의 계선(界線)을 약화시켜야 제대로 작동하는 정신 활동이 있다’는 말처럼 소설은 이래야 하고, 시는 이래야한다는 내가 정립한 한계를 흐릿하게 해야 문학 안에서 정신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깊이의 비전 대신에 옆으로 보는 비전’을 따라가며 시를 읽으면 글자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기보다 유유히 물살을 가로질러 꼭 앞으로가 아니더라도, 어디로든 나아갈 수 있었을 테다. 깊이 있는 독서를 추구하던 버릇이 쉽게 사라지진 않겠지만 ‘새로운 시를 읽는 것은 정신을 해체하고 산문을 읽을 때나 대화에서 사용하는 모든 논리적⦁서사적 연결을 버리는 것1)’이라고 한 C. S. 루이스의 말과 ‘시의 유일한 목적은 새로운 이미지’라고 한 김인환 교수의 말처럼 굳어진 관습과 고집을 버리고 시를 대하면 언젠가는 어딘가에 도달해있지 않을까.


음악을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 음악 안에 있는 ‘소리’를 들으라고 강조한다. 음악 안에서 지배하는 선율과 반복적인 리듬에만 집중하면 귀 뒤, 머리 위, 입 안에서까지 울리는 소리를 놓치게 마련이다. 음악(music)을 소리(sound)로 듣듯 시(poetry)를 이미지(image)로 볼 수 있다면 “거기에 확실히 존재하나 아직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 것의 이미지”와 ‘미래의 말, 미래를 촉발시키는 말, 미래에 그 진실이 밝혀질 말’을 보는 눈이 생기리라 기대한다. 비평가의 비평을 비평한 흥미로운 형식의 글을 통해 시에 다가가는 첫 걸음을 뗐다. ‘공부의 모자람을 스스로 알게 하여 공부하게 만드는 책’이라는 책 소개에 충실히 정당성을 부여하는 책이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페이지를 넘기다 아는 이름이 나오면 반가움에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 듯 눈을 굴리는 나는 아직 한참 모자란 사람이다.


“육체는 슬프다. 아 나는 모든 책을 다 읽었구나.” 이 책뿐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자주 인용되는 말라르메의 그 유명한 「바다의 미풍」첫 행이다. 아직은 모자람과 부족함에 고개를 숙이지만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책들이 무수히 내 앞에 펼쳐져 있으므로 내 육체는 아직 슬프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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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독: 문학비평의 실험, 123쪽



글  고지인 (문학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