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문학 온 스테이지(On Stage)
작가(writer)와 작가(artist): 한국문학으로 시각예술 구연하기

문학 온 스테이지 (On Stage) 프로그램 소개

상업화랑 기획 문학 온 스테이지 (On Stage) 프로그램은 글과 이미지, 큐레이터와 예술가, 작가(Artist)와 작가(Writer) 의 관계를 고찰해본다. 김인환 산문집 『타인의 자유』에서 출발하여, 회화와 설치작업을 하는 김지민 작가와 김성희 기획자는 글과 이미지에 대한 대담회와 낭독회를 진행했다. 최종 결과물인 대담회와 낭독회는 영상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또한 아트시(Artsy)의 문학 온 스테이지 연계 온라인 전시를 통해 김지민 작가의 신작을 만나볼 수 있다.



1. 기획의 글: 맥락(context)에 대하여


“의미는 책의 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책들이 다른 책들과 맺는 무수한 관계 안에 있는 것이다. 책들과 책들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들의 결을 파악하려면 깊이의 비전 대신에 옆으로 보는 비전을 따라가야 한다. 측면의 독서만이 맥락을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맥락의 독서는 미완성의 독서이고, 중도에 있는 독서이고, 항상 중요한 무엇인가를 남겨놓는 잉여의 독서이다.“

- 김인환, 『타인의 자유』 p. 30


김인환 작가는 책의 첫 장인 ‘독서의 가치’에서, 독서의 방식과 가치에 대해 서술한다. 이 과정에서 상호텍스트를, 세상 모든 텍스트들이 얽혀있고 또 서로가 없이 존재하지 못함을 설명한다. 상업화랑과 김지민 작가는 이를 확장하여 문학 작가와 미술작가 사이의 상호작용을 탐구하였다.


하나의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텍스트가 불가결하게 필요하다. 예술 작품을 이해하는 과정도 비슷하다. 한 작품 이면을 이해하기 위해 작가와 작품이 걸어온 길 즉, ‘경험된 글’을 들여다보는 것은 작품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미술사를 배우며 동시대의 작품에 축적된 수많은 가치와 지식의 흔적들은 서로 상호작용한다. 즉, 작가의 글을 읽을 때도 이전의 미술사나 사회학, 철학, 문학과 같은 다양한 텍스트들을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저널리즘 포토그래퍼인 케빈 카터(Kevin Carter)를 생각해보자. 그의 사진은 20세기 후반 미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왔다. 어린 아이가 굶주림에 고통 받는 모습 자체로도 많은 감정과 사회적 논의를 불러오지만, 이 아이를 향한 돌진 할 것만 같은 독수리의 모습은 이 사진을 더 강력하게 만들면서도 논란의 중심에 서게 만들었다. 이 사진이 퓰리처상을 수상 후 사진의 맥락, 즉 사진 속의 아이의 안위와 이 사진을 찍게 된 경위에 대해 궁금한 독자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굶주림에 허덕이는 아이를 구했어야 할 어른이 그 순간을 사진으로 포착했다는 이유에서 ‘타인의 고통’을 간과한 케빈 카터에게 지속적으로 비난이 쏟아졌다. 더 극적인 순간을 위해 20분가량을 더 기다렸던 케빈 카터의 작품은, 서구 사회에 ‘재난’에 대한 인식과 각성을 촉구하게 만들었다는 평가와 동시에 큰 비난을 받는다.


맥락(context)의 기능이 텍스트의 단순한 표면적 의미를 넘어 이 의미 속에 숨겨진 주변 상황, 시간, 환경, 문화 등과 같은 요소들을 통해 진의(眞意)를 파악하는 것이라면, 피상(皮相)적 이미지와 언어의 속임수를 넘어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한 총체적 요소들을 파악하는 행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개념을 가지고 케빈 카터의 작품으로 돌아가 보자. 그가 이 작품을 찍기 위해 거쳐야 했던 상황을 관객들이 먼저 이해할 수 있었다면 이 사진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는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었을 것이다. 케빈 카터가 무장 단체에 의해 저지되었다는 사실과 그가 사진 속 아이를 도와주기 위해 어떠한 행동을 취했을 때 그가 당해야 했던 위협과 같은 맥락으로 이미지를 이해하는 것은 시각예술에서도 중요한 지점이다.


Kevin Carter, The Vulture and The Little Girl, 1993. (이미지)


Experimental Ethnography: Karen Knorr, <Belgravia>


영국 특정 시대의 이야기를 사진과 텍스트로 전달하는 런던 거주 미국계 작가 카렌 노어(Karen Knorr)의 <Belgravia> 시리즈를 살펴보자. Belgravia는 영국 런던 부촌 지역의 이름이다. 중세시대 Belgravia 지역의 평판은, 노상강도와 많은 범죄들이 일어나는 것으로 인해 위험한 지역으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19세기에 영국 후작 Richard Grosvenor, 건축기사 Thomas Cubittd의 지휘 아래 센트럴 런던에서 가장 부유한 동네로 자리매김했다.


카렌 노어(Karen Knorr)는 <Belgravia>라는 제목으로 런던의 상류사회의 모습을 촬영하고, 그와 관련된 텍스트를 병치시켜 메시지를 전한다. 특히, 1970년대 말과 80년대에 보수적인 분위기가 만연하던 영국 런던의 모습과 특정 계층과 부(wealthy)를 표현한다. 1980년대의 영국은 마가렛 데처(Margaret Thatcher)와 로날드 레건(Ronal Reagan)이 특별한 관계를 맺기 시작하고, 영국 정부가 러시아를 향해 순항 미사일을 쏘는 것을 허용하기도 했으며,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분위기가 휩쓸던 시대이다. 인종차별주의가 만연했으며, 경제난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실업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잉글랜드 민족주의’가 사회를 강타하고, 이것으로 인해 파키스탄과 인도 이민자들이 차별당하고 공격받던 시절, 영국 사회는 분노와 혼란으로 가득했다. Knorr는 이러한 혼란 속에서 런던의 부를 상징하는 동네의 특성을 인물, 실내 장식, 패션을 포착하여 보여준다.

Karen Knorr, <Belgravia> 시리즈 일부. 출처: karenknorr.com/photography/belgravia/

<Belgravia> 시리즈의 키워드는 텍스트와 사진, 시대의 이야기(역사) 그리고 민족지학(ethnography)적 접근일 것이다. 이 시리즈를 이해하는데 요구되는 지식은 영국의 특정 시대의 역사와, 민족지학에 대한 이해 그리고 텍스트와 사진(이미지)의 관계에 대한 이해다. 이러한 이해 없이 이 사진 작업을 바라본다면, 그저 레트로 분장을 한 모델들의 모습과 흑백사진, 의미심장한 단어의 나열로만 비춰질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사진에 등장하는 배우들과의 대화에서 영감을 받아 텍스트를 작성하고 사진과 함께 배치했으며, 텍스트와 이미지는 서로를 보완하며 존재한다.


문장을 접했을 때 떠오르는 ‘상상력’을 사진 속 요소들이 채워주며, 사진을 보며 추측하던 것을 ‘문장’이 채워주며 한 작품이 완성된다. 그러나 상상력을 제한하며 한정된 해석을 제시하는 지점은 비판 받을 수 있는 면으로 인식될지도 모른다.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특정 환경과 문화는 오역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글과 이미지를 결합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해석의 여지는 상실되나 그만큼 정확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시각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동반되는 ‘맥락’ 파악하기는 한 순간에 끝나지 않는다. 맥락의 줄기 이해하기는 한 지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줄기가 겹치고 겹쳐 보다 놓은 이해를 끌어낸다.


모든 것은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수많은 작가(writer)와 작가(artist)들은 자신의 경험, 영감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각을 제시한다. 글과 이미지는 다르지만, 이것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방식의 차이일 뿐 결국 자신의 시각과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글과 시각언어는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독자는 글을 읽으며 자신의 상상력을 통해 글을 가시화한다. 반대로, 관객은 가시화한 예술작품에 관한 감상을 글로 써내려간다. 이들은 전문적인 평론가가 아니더라도 SNS를 통해 자신들의 감상과 해석을 자유롭게 공개하며 다른 이들과 소통할 수 있다.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야 한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야 한다. 우리는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야 한다. (...) 도시에 통용되는 것은 상승하는 행복이지만 인간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하강하는 행복이다. 환자의 자리에서 보지 않으면 애인의 참얼굴을 알 수 없고 죄수의 자리에서 보지 않으면 사물의 참모습을 알 수 없다.“ 

-  김인환, 『타인의 자유』 p. 84, p. 93.


어쩌면 이는 이미 많은 것을 이루고, 삶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수없이 경험한 노년의 학자가 말해 줄 수 있는 통달의 시각일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것처럼,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것처럼, 마지막으로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은 현대사회를 표상하는 이미지와 상반된다.


물질 만능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것처럼 살아갈 것이며, 거짓 뉴스와 찌라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으며, 또한,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무언가 가지고 싶다는 ‘욕구’를 거스르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하강하는 행복’이란 아래부터 위까지, 위에서 아래로 순환하는 굴곡과 참된 행복의 의미를 깨닫는 것일 것이다.


이러한 삶에 대한 끊임없는 통찰과, 개인의 철학을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하여 응축된 하나의 이미지로 만들어내는 과정은 끊임없는 글쓰기와, 구상 그리고 기획자와 작가의 협업 속에서 탄생한다. 작가는 작품 안에 온전히 뛰어들어, 자신의 내면과 분리되지 못할 때가 많다. 기획자는 외부에서 작품과 작가를 끊임없이 응시하여, 큰 맥락 속에서 이야기를 구성해야 한다. 작가의 이야기 그리고 외부인으로서의 기획자의 이야기를 통해, 작품 제작의 과정을 고민해보자.


글  김성희 (상업화랑 전시기획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