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현  JIHYUN PARK

Thomson#

 3 - 21 Jun. 2020

Mullae

톰슨과 도무송


<Thomson #>(톰슨 넘버사인, 이하 톰슨) 시리즈는 한국에선 도무송이라 불리는 인쇄기술에 사용된 중고 목형을 캔버스 삼아 제작된다. 도무송은 원이나 하트 등 직선으로 재단할 수 없는 형태의 틀을 만들어서 프레스 기계로 찍어내는 인쇄 기법이다. 단어의 유래가 흥미롭다. 이 기술을 처음 만들어 기술의 명과 동명이 된 톰슨(Thompson)의 이름을 일본에서 토무손이라고 부르다가 한국에서는 도무송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도무송은 다양한 모양의 스티커 제작에 주로 사용되지만, 규격이 아닌 모양의 박스나 봉투 등을 제작할 때도 많이 사용된다. 제작을 원하는 모양의 칼을 제작하고, 칼을 부착하기 위한 합판을 제작한 뒤, 제작된 칼과 합판을 결합하여 목형을 만든다. 이 목형으로 프레스 기계를 이용해 1장씩 재단한다. 봉투부터 상자, 스티커를 찍어낸 뒤에 기능을 다한 목형은 폐기된다. 특별한 디자인에 맞춰 특별 제작이 되는 목형일수록 재사용을 할 수 없게 된다. 애초 이 특별 제작이 가능한 데에 도무송의 존재 의의가 있기도 하다.


박지현은 도무송 목형의 유일무이함에 관심을 둔다. 제 역할을 다한 뒤에도 여전히 독자적으로 특별하게 존재하는 폐기물을 살폈다. 을지로 인쇄소 거리에서 유심히 관찰당한 도무송 폐기물들이 박지현에 의해 수거되기 시작했다. 도무송 제작 업체의 폐기 물더미에서 ‘새마을 삘딍’이라는 현판이 걸린 을지로의 건물 4층의 작업실로 이동된 도무송 목형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흥미로운 형태나 높낮이로 변형된 목형 위에 색 안료가 섞인 레진을 올린다. 목형을 만들 때 직선 형태의 칼을 휘거나 꺾어 기계를 이용해 모양 작업을 하므로 칼을 만드는 시작점과 끝점의 연결에 약간의 틈이 발생하는데, 이 사이로 레진이 살짝 흘러내리는 것도 도무송 목형의 장점을 충분히 살려낸 부분이다. 유일무이한 목형 위에 다양한 색 안료가 덮어 씌워지며 회화 같기도 부조 같기도 하지만 캔버스를 사용한 적은 없는 제 3의 매체가 만들어졌다. 높낮이가 다른 나무가 지지대가 되고, 안료가 얹어진 상태의 부조로 봐야 하는지, 목형이라는 캔버스 위에 물감으로 색칠한 회화로 봐야 하는지는 관객의 판단에 맡기기로 하자.


이스트빌리지와 을지로에서 줍기

사실 회화나 조각 같은 매체를 구분하는 건 박지현의 작업을 이해하는 과정에 있어선 불필요하다. 장르를 깊이 논의하는 게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탈장르, 혹은 경계에 있다는 거창한 변명도 필요 없다. 그의 작업은 회화를 제작하겠다거나 조각을 제작하겠다라는 자세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의 작업은 외견과 달리 조각에 더 가깝고, 굳이 이론적인 표현을 끌어다 말하자면 ‘레디메이드(Ready-made, 기성품)’를 백분 활용한다. 그리고 이 레디메이드의 출처는 주로 거주하는 도시 안에서 ‘발견된 거리의 물건(found object)’들이다. 거리에서 작가에 의해 나름의 가치가 발견된 물건들을 줍고 줍는다.


박지현의 ‘줍기’는 기원이 오래다. 2000년대에 십여 년간 이스트빌리지에서 체류하며 찾은 발견된 오브제들은 그의 작업의 일부이거나 작업실의 일부인 채 함께한다. 2010년대에 을지로로 작업 공간을 바꾼 작가는 여전히 동네 안에서 해찰하며 산책하고, 발견하며 ‘줍줍’하기를 이어나가고 있다. 을지로가 힙지로이기한참 전부터 지역을 수집하며 살아온 박지현을 두고 개인적으로는 농담 삼아 을지로의 현현이라 말한다. 을지로식 전시공간인 ‘상업화랑’에서 ‘을지로의 현현’의 <톰슨>전을 보게 된다니 기대도 크다. ‘상업화랑’ 이란 비상업적 공간은 또 박지현식 말장난에도 얼마나 맞춤한 공간인지 모른다. 박지현이 지속적인 시리즈로 이어오고 있는 작업 중에 <말장난>이 있다. 유니콘(unicorn)의 머리에 뿔대신 콘(corn)인 옥수수가 자라거나, 밥상에 실제 상에 쓰여있는 정형적인 상장 문구를 새기거나, 유리잔들을 한 테이블 위에 모아두고<잔소리>라는 제목을 붙이고 식으로 시종일관 말장난들로 이어지는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들은 그가 세상을 보는 태도를 보여준다. 같은 단어들 두고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 보거나 말장난으로 바꿔보거나 시각적으로 구현해보는 태도 말이다. 전형적인 개념미술가들의 작업 방식으로, 실상 박지현의 작업을 장르에 가둬 설명하는 게 무의미해진다는 말을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기도 하다. 아이디어를 구현할 적에 장르나기술의 한계에 절대로 갇히지 않는다.


다시 도무송, 아니 <톰슨>

을지로의 줍기와 말장난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됐다면 우린 다시 도무송으로 돌아와야 한다. 톰슨이라는 외국 이름이 받침 발음을 어려워하는 일본에서 토무송이라고 발음되다가 한국에선 도무송이 된 이 혁명적 인쇄기술과, 그 기술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작되는 도무송 목형에게로. 탱크도 만든다는 을지로에서 정교하게 제작된 도무송 목형 위에 말끔한 마감이 되니 미니멀한 모더니즘식 단색화 작품이 탄생한다. 나무가 타일로 완전히 변신했지만, 우리는 이제 안다. 이 타일이 단순한 하트모양과 사각형의 모던한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이 말끔한 작품 뒤에 숨은 수많은 문화적 지역적 공간적 컨텍스트들을 이제는 충분히 이해하리라 짐작한다. 말장난같이 한국에 유입된 외래 어휘를 희화하기도, 소멸을 예감하는 을지로를 기록하기도, 여전히 조형적인 아름다움, 혹은 궁극의 완성을 추구하기도 하면서, <톰슨>전이 을지로에 찾아왔다.

 

글. 이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