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ljiro

허승범 개인전  |  @vpszombie

《동물원 탈출기》

2026.3.14. - 2026.4.4.  

오프닝 3.14  15:00-19:00


우리는 어떤 동물이 동물원을 탈출했는지 알지 못한다.

 

《동물원 탈출기》는 22개월 된 딸과의 일상에서 시작되었다. 함께 동요를 부르고 동물 이름을 가르치며 보낸 평범한 나날 속에서, 나는 잊고 있던 동심의 세계와 마주하게 되었다. 어느 날, 딸이 고기 굽는 집게를 보고 ‘악어!’라고 외쳤다. 날카로운 톱니는 악어의 이빨 같았고, 긴 손잡이는 몸통을 닮아 있었다. 그 순간, 우리도 한때 모두 아이였고 자유롭게 상상하던 시절이 있었음을 떠올렸다. 프로이트의 말처럼, 문명인이 되기 위해 언어와 사회적 규범 속에서 동심은 쓸모없고 유치한 것으로 무의식 깊숙이 억압된다. 허승범, 2025.

 

허승범 작가가 얘기하고 있는 《동물원 탈출기》에서 주재료는 장난감이다. 작가의 설명을 빌자면, 아버지가 된 시점에서 어린아이의 눈을 통해서 새롭게 장난감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었다. 흔히 말하는 ‘새롭게 보기’의 시작인 셈이다. 원래 쓸모없는 물건의 새로운 효용성을 발견하는 것은 예술가가 오랫동안 해온 일이다. 미술사에서 잘 알려진 예를 들자면, 1920년대 초현실주의자들이 일상의 억압된 사회적 생각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재봉틀, 테이블, 우산과 같이 매우 일상적인 물건으로부터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고자 했다. 상징적이기는 하지만, 기능성의 측면에서 규정해온 재봉틀이나 우산의 용도, 즉 옷을 꿰매고, 비를 받치고 등의 전통적인 역할을 부정했다. 그리고 유용한 물건들이 효용성을 잃어버리고 예술가의 눈에 의해서 새롭게 발굴되고 예술 작품의 부분으로 수용될 때 진정한 예술이 시작된다고 보았다.


이때 예술가는 물건을 그 자체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것들을 함께 병치한다. 전통적인 기능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기는 한데, 예술가가‘감각적이고 지적인 놀이’를 통해서 새로운 배열을 만들어내게 되면 그것을 바라보면서 제목과 연결해서 새로운 쓰임을 상상하는 것은 감상자의 몫이다. 예술가의 실험은 비로소 감상자가 이 유희의 과정에 참여하게 될 때 완성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사진의 역할이다. 허승범은 장난감들을 조합해서 배열한 후에 사진을 찍는다. 특정한 배열과 구성을 통하여 자신의 관점을 첨가해간다. 여기서 리얼리티는 ‘연출된(staged)’ 것이기는 하지만, 사진의 앵글이나 빛과 그림자의 배열에 따라 감상자의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 감상자는 제목을 통해서 특정한 메시지를 읽어낼 만한 단서를 얻기도 한다. 장난감이 놓인 특정한 방식뿐 아니라 이것을 바라보는 사진가의 특정한 시점과 제목에 힘입어 감상자는 비로소 전체 상황을 파악하게 되고 ‘빈틈’을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채워 넣게 된다. 답안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수많은 조합을 통하여 작가와 감상자가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는 과정은 예술 감상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사진가는 이러한 효과가 현상적인 리얼리티를 조작하지 않고도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준다. 보이는 방식뿐 아니라 보는 방식이 상상력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재차 확인시켜준다.

 

...(중략)


       

고동연(미술사/미술비평)


디자인

전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