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LJI-RO
임희윤 Solo Exhibition
《Hug》
27. December 2024 - 18. January 2025
이따금 끔찍하게, 결국엔 아름답게.
요즘같이 혼란스러운 시대엔 유독 사이란 말의 무게가 다르게 다가온다. 너와 나, 혹은 세계와 나 그 모든 것들과 나 사이의 간격이 발밑 지천으로 깔린 모래알처럼 가깝게 느껴지다가도, 어느새 지구를 떠나 저 멀리 숨 쉴 한 줌의 공기조차 희박한 공간 속 가스 덩어리와 나 사이의 거리처럼 까마득히 멀게 느껴진다. 데칼코마니는 좌우가 대칭인 것 이외의 그 어떤 요소도 이해되길 거부하는 이미지로서 존재한다. 그것은 사이에 선을 긋는다는 철저한 계획 속에서 창조되지만, 선을 넘어 이미지가 형성되는 순간은 완벽한 우연의 저울 위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다. 어떻게 이런 것들이 생겨났는지, 그 사이엔 무엇이 존재하는지 그 무질서한 웅덩이 안에서 아무리 손을 휘저어봐야 아무것도 건져 올릴 수 없다. 이처럼 세계와 세계, 이념과 이념, 너와 나, 그 무수한 것들 사이에 선을 긋고선 양쪽을 바라보다 보면 절대 서로 온전히 이해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을 것이란 걸 알게 된다. 희윤은 전시 내내 데칼코마니를 통해 자신의 세계를 가로지르는 사이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잠시 한눈을 팔면 서로의 숨소리가 들릴 만큼 아주 가까이 다가와 둘 사이에 있는 모든 것을 터트리고 짓이기는 폭력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남은 찌꺼기는 이따금 소름 끼칠 정도로 끔찍하게 보이기도 한다. 다만 희윤은 그것들을 무작정 더럽고 끔찍하게 볼 것이 아니라, 현실과 한 발짝 떨어트리고 작가적 세계로 불러올려 결국엔 아름답게 보려 한다. 이것은 세계에 대한 도피나 낙관에서 온 작가의 무지함이 아니라 세계를 따뜻하게 품어내려는 안간힘이다.
희윤은 작업을 보편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특수성을 지니게 하려고 노력한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꿈이나 비현실, 혹은 더 나아가 초현실의 질감과 더 가깝게 느껴지도록 뒤가 비쳐 보이지만 그 물성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트레이싱지 위에 작업물을 출력하는 것을 통해 또렷한 현실 위에 보일 듯 말듯 한 그 보드랍고 몽롱한 레이어 하나를 덧씌운다. 또 단순한 평면 위에 이미지를 프린트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물의 대지 자체를 입체화시켜 어떻게 해서든 벽으로부터 손가락 한 마디만이라도 떠오르게 한다. 다소 부실한 레이어 위에 이미지를 출력했던 1층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면 거대하면서도 견고한 이미지를 마주하게 된다. 소재는 페브릭으로 변경되고, 이미지는 현실을 더욱 적극적으로 방해하기 시작한다. 공간 위에 덧씌우는 수준이 아닌 공간을 가득 채우고, 관람자가 현실을 감각하는 것을 방해하는 행위로서 개입한다. 1층에서 현실을 떠올리며 이미지를 관람하고, 2층에서는 현실에서 완전히 벗어나 이미지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작가가 감각하는 세계는 현실에 존재할 수 없고, 환상적인 세계라는 것을 거듭 주장하며 관객에게 설득하려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것이 희윤의 작업이 마냥 따뜻하게만 느껴지지 않고, 염세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이유다. 희윤은 세계의 끔찍함은 그대로 둔 채 그 위에 레이어를 덧씌워 새로운 시각을 불러온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느껴지는 이질적인 포근함과 전시장을 나설 때 느껴지는 뭉근한 든든함은 이러한 작가의 고민의 결과다.
희윤의 작업은 자신이 겪는 관계를 기호화하려는 수단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계속된 실패의 기록에 가깝다. 물질세계의 대부분의 것들은 물론 관계처럼 관념적인 것들마저 우연에 의해 발생하고 작용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과정을 겪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우연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고 해서 그것을 드러내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것은 아니다. 각기 다른 세계가 서로 만나 그 짓이겨져 나온 관계의 찌꺼기를 질색하다가도 빤히 들여다보길 멈추지 않는다. 현실의 끔찍함을 똑바로 바라본 채 자신의 세계를 그 위에 덧씌우며 끊임없이 헤매고 나서는 결국 전시장마저 그 기이한 작업물로 가득 채우고 자신과 주변인들을 껴안다 못해 기어이 그 끔찍한 세계마저 눈을 부릅뜨며 껴안는다. 다만 세계를 똑바로 바라보며 껴안는다는 것이 성스러운 포용의 마음이나 희생의 자세는 아니다. 그것은 단지 세계의 끔찍함에 맞서 자신의 세계를 지켜내고야 말겠다는 희윤의 투쟁의 몸부림에 가깝다.
관계는 흉포한 세계와 개인의 희망이 만나 발생한 우연한 이미지이다. 그것은 때론 끔찍하기도 어쩌면 아름답기도 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땅에 발을 딛고 누군가와 혹은 무언가와 관계 맺는 행위가 인과의 개연성에서 멀리 떠나 우연한 무질서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우연한 관계를 어떻게 껴안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오늘 이곳에서 어떤 우연을 만나게 될까. 어떻게 껴안을 수 있을까. 정답을 찾지 않아도 좋지만 그래도 전시장을 떠나는 관객들의 마음이 조금 더 포근해졌으면 좋겠다.
글. 강인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