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LJI-RO

구성연 Solo Exhibition

《사라지지 않으니까》

27. August - 14. September 2024


나는 약간의 수집벽이 있는 사람이고 나의 몇 가지 수집품 카테고리에는 ‘초록색 물건들’이라는 항목이 있다. 사고 얻고 때로는 줍는 방식으로 콜렉션이 늘어난다. 하루는 길에서 마음에 드는 초록색 플라스틱 통을 발견했다. 한참 망설였지만 나는 그걸 줍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다. 예쁘고 깨끗하고 튼튼해 보이는 그 초록색 통은 빈 세제통이었고 어쨌든 버려진 세제통이란 쓰레기니까.


어떤 물건은 처음부터 쓰레기가 되기로 예정된 채 만들어진다. 음료수나 샴푸나 세제를 담은 플라스틱 용기들은 담고 있는 내용물이 없어지는 순간 그 기능이 여전한데도 곧장 ‘쓰레기’가 된다. 오히려 그 기능을 유지하는 튼튼하고 변하지 않는 속성 때문에 더욱 골치 아픈 쓰레기가 된다.

인류 역사에서 인간이 물건을 만드는 데 사용했던 모든 재료는 자연에서 왔고 결국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이 가볍고 유연한 새로운 물질은 분해되지 않으므로 자연의 순환에 들어가지 못하고 어떤 형태로든 우리 주변에 남게 된다.

지금은 얌전하게 재활용쓰레기 봉투에 들어가 있지만 결국은 매립지나 소각장으로 옮겨진 후 대기나 토양의 오염물질로 불리게 될 것이다.


잠깐동안 유용했으나 한 번도 누구에게도 열망의 대상은 아니었던 채로 긴 시간 동안 쓰레기로 불리게 될 이 물건들을 나는 잠깐 동안 난초로 있게 한다. 난초는 이슬만 먹고 사는 정결한 속성을 지녔다 하여 군자로 불리며 오래도록 사랑받아 온 식물이다.

나는 그동안 금새 사라질 것들을 사진으로 찍는 작업을 했다. 지금 나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사물을 대상으로 작업한다. 실재하는 어떤 것도 사라지지 않는 것은 없지만 결국 어떤 것도 아주 사라지는 것은 없다는 물리적 사실이 때로는 마음의 위로가 된다. 플라스틱 쓰레기들에 대한 근심에서 난초 작업을 시작했지만 바위시리즈를 작업하면서 다른 시간의 감각을 가져보면 희망이 떠오르기도 한다. 모래가 암석이 되는 지질학적 시간 속에서라면 오늘 플라스틱으로 불리는 이 물질이 한 번쯤은 난초가 될 법도 하다고 생각해 본다.



글. 구성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