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LJI-RO

신승주 Solo Exhibition

《무대 실험》

5. June  -22. June 2024


관계와 접점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에 관하여


각진 것을 각지게 놔둔다. 신승주와의 대화에서 나온, 내가 느낀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작가의 말이다. 불편한 것을 불편한 대로, 느낀 것을 느낀 대로 둔다.


불편한 것을 불편하게 놔두면 누가 뭐라 그러지 않을까? 작가의 말을 듣고 떠오른 나의 첫 번째 생각이다. 나 힘들다고 하면 누가 나한테 뭐라고 하면 어떡하지. ‘너 지금 힘든 거 아냐. 세상에 너보다 힘든 사람 얼마나 많은데.’ 이럴까봐 한 번, 두 번, 삼켰던 말들이 떠오른다. 그런데 작가는 각진 거 그냥 놔두겠다고, 불편한 거 그냥 두겠다고 한다. 판단을 하든지 말든지 그냥 나 지금 이렇다고 보여준다고 한다. 그냥 보여 주는 데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나는 섣불리 겁이 난다.


관계가 어려운 것은 서로 원하는 지점이 달라서 일 것이다. 원하는 방향성이 달라서 일 것이다. 누군가는 알아달라고 외치고, 누군가는 그게 아니라고 소리친다. 나는 항상 무서웠던 것 같다. 접점이 있어야 정리가 되는 줄 알았는데, 접점이 안보일 때는 나 혼자 노력해야 하는 거라고, 내가 인위적으로 접점을 만들면 좀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서 노력했는데, 미친 듯이 노력해도 항상 애매하게 끝나는 지점들이 있었다. 내가 거기까지 하지 않아도 되던 것들이 신승주의 작업을 보고 눈에 밟힌다. 거기까지 애쓰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거기까지 나 혼자 노력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남이 조금 또 밀어주고 만들어 주는 것이 관계라는 것을 신승주의 작업에서 조우한다.


이번 전시에서 만나는 두 작품은 다 그런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내가 멈췄을 때 있어 준 내 옆 누군가의 모습을. 가깝기에 느낄 수밖에 없는, 불편함과 안락함이 공존하는, 내가 잠깐 정지하고 싶을 때 나를 밀어주는 누군가와의 관계를. 작가는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의자와 소수의 몇 명이 앉을 수 있는 의자를 설정한다. 《무대 실험》이라는 전시의 제목에서의 ‘무대’는 우리의 인생일 것이다. 작가는 소수의 몇에게만 곁을 허락하겠다고 한다. 더 많은 사람은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각진 것도 각진 거긴 한데 그나마 그거 보여주는 것도 소수에게만 하겠다고 한다. 자신이 볼 수 있는 반경에서만, 자기가 소화할 수 있는 반경의 사람에게만. 그 반경의 사람들과 만들어 가는 좁고 깊은 균형의 실험을, 자신의 무대에서 조금씩 쌓아가는 관계의 균형에 관한 신승주는 이야기한다. 〈필사의 자리〉는 두 사람이 앉는 의자다. 아주 예전 친구 엄마가 앉아있던 흔들의자를 모티브로 만든 이 의자는 둘이 앉아야 한다. 필사의 자리에서 ‘필사’는 ‘필사적으로’라는 의미이다. 신승주는 다양한 역할들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람을 위한 자리라고 작품을 소개한다. 작가는 “흔들려도 괜찮다. 멈춰 있어도 괜찮다.”라며 힘든 시간을 함께 있어준 누군가와 함께한 마음을 말한다. 이 의자의 또 다른 모티브는 고문 기계. 안락함과 고문을 둘 다 상징하는 이 의자가 눈길을 끄는 것은 앉아있으면 ‘절대로 마주치지 않을 시선’이다. 마주치지 않는 시선, 그러나 함께하는 온기, 느껴지는 분위기 속에서 함께 앉은 사람들은 관계를 시작한다. 지하철이나 버스가 아니라 일정한 공간에서 일정한 시간에 함께 앉은 사람들은 몰라도 아는 사람처럼, 알아도 몰랐던 사람처럼 오롯하게 그들의 공간을 관계로 메운다. 각자의 방향에서, 각자의 시선에 따라 이동하는 자신의 생각을 함께 모두 공유하지는 않아도, 눈치와 분위기로 읽어내게 되는 상대의 감정. 그런 것들이 나는 가끔 겁이 났는데, 내 감정이 남들에게 너무 쉽게 공유될까봐 나는 무서웠는데, 신승주는 작품에서 유도한다. 신승주는 너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잠깐 멈춰도 네 옆의 누군가 너를 움직이게 해줄 거라고.


〈비빌 언덕〉은 큰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비빈다고 하는데 글쎄, 비벼도 되나 싶을 만큼 편해 보이지는 않는다. 작가가 아이가 태어나고 안전하고 부드러운 재료에 관심이 있었다고 했는데 이 작품은 그런 것들도 다 없어지고 나무만 남았다. 거기 앉는 사람들은 또 균형을 찾을 것이다. 어떨 때는 발을 딛고, 어떨 때는 좀 비스듬하게도 앉아봤다가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왜 의자일까? 문득 신승주가 좋아하는 것이, 자꾸 만드는 것이 왜 의자일까 의문이 든다. 몸을 기댈 곳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무너졌을 때 바닥에 앉으면 일어나기가 어려우니까 중간 위치에 떠있는 의자를 말하고 싶은 걸까. 언덕도 완전 평지가 아닌 좀 떠 있는 느낌이니까, 약간은 아래를 볼 수 있으니까 그런 것을 같이 말하고 싶었던 걸까. 다시 너무 처음부터 시작하려면 너무 힘들 테니까 그런 걸까. 어쨌든 편하고 싶지만 절대 편할 수 없는 의자, 나 혼자 무리한다고 잘 움직이지 않는 의자로 신승주는 자기 마음을 표현한다. 그건 사실 남과 있을 때, 그러니까 나 혼자가 아닐 때 온전하게 느끼게 되는,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내 바운더리에 들어오게 되었을 때 신경 쓰게 되는 어떤 지점들이 있다는 것을, 나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있지만 사실은 절대로 나 혼자만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게 인생인 것을 신승주는 의자로 말해준다.


이렇게 신승주는 자기 무대를 조금씩 실험하는 방식을 작품으로 보여준다. 약간은 나를 지키는 방식. 나의 인생에서 내 곁에 둘 사람들을 아주 약간 주체적으로 고르는 방식. 그러나 그 사람들에게도 “너 내게 너무 가까이 오면 불편해.”라고 말해주는 방식. 그래서 아주 조금 다른 지점을 그저 놔두는 방식. 그렇지만 방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맞추면 될 거라고, 지금 우리 좀 불편해도 맞춰보면 그래도 뭔가 보일 거라고 말해주는 방식. 이렇게 살아가는 여러 방식을 실험하는 인생이라는 무대를 신승주의 작품에서 엿본다.


글. 박주원(독립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