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LJI-RO


임재형 Solo Exhibition

《가장 먼 곳》

12. January 2024 - 27. January 2024


여름의 연못 앞에 서서 문득 겨울 연못을 그릴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돌아보면 늘 그런 식이었다. 대화보다는 편지처럼, 눈앞에 없을 때에만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는 듯이.


잘린 가지들이 목을 내민 채 멈춰 있는 겨울 연못은 을씨년스럽고 고즈넉하다. 지난해의 연꽃은 모두 사라졌다. 땅속에는 이듬해의 꽃이 잠들어 있을 것이다. 앞선 세대의 흔적과 다음 세대의 기약 사이를 가로지른 채 수면水面은 쉼없이 흘러가는 하늘의 색을 비춘다. 떠나간 것과 아직 오지 않은 것, 지나가고 있는 것으로 가득한 풍경이다. 나는 읽을 수 없는 글을 필사筆寫하듯 가지의 모양을 옮긴다. 자간과 행간을 헤아리듯 수면의 색을 채워간다. 의미를 찾는 인간에게 묵묵부답의 세계는 읽을 수 없는 책이다. 우리는 그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더듬어 찾으려 한다.


〈나날〉에는 모종의 반복이 있다. 중간의 세 마디에 bis두번 연주하기기호가 붙은 5마디 악보의 진행처럼*, 첫 장과 마지막 장 사이에서 세 장의 그림이 반복된다. 삶의 첫날과 마지막 날은 두 번 찾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 사이에는 무수히 돌아오는 낮과 밤, 그리고 계절이 있다. ‘나날’은 두 개의 ‘날’을 이어 만든 말이지만 실상 ‘반복되는 모든 날’을 뜻한다. 그 모든 날은 서로 다른 날이기도 하다. 그림 속 흑과 백, 있는 것과 없는 것, 가지와 가지 아닌 것, 물과 물 아닌 것은 같은 테두리를 공유하며 맞닿은 채 서로의 모양을 규정한다.


허물을 벗는 문과 깨진 창을 그릴 때는 빈 괄호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흰 종이는 이미 비어 있지만, 종이의 한 부분에 괄호를 치는 순간 괄호 안의 종이는 나머지 부분과 다르게 보인다. 그제서야 진정 비어있게 되기라도 한 것처럼. 이때 빈 괄호는 ‘없음’ 자체를 조명하는 장치가 된다. ‘그린 부분이 어떻게 그리지 않은 부분을 달리 보게 하는가’. ‘그리지 않은 것을 어떻게 그림의 주인공으로 만들 수 있는가’의 문제는 나의 오랜 관심사였다.


〈몽타주〉는 무관한 경험을 연관 지으며 의미의 체계를 만들어가는 개인의 관점에 관한 그림이다. 영상매체의 몽타주가 서로 다른 장면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면, 삼각형 구조 위의 그림들은 특정한 순서를 형성하지 않는다. 예각을 이루며 둘러선 탓에 관객은 한 번에 하나의 그림만을 볼 수 있다. 별개의 장면이 모여 의미를 촉발하는 곳은 작품을 돌아본 관객의 머릿속이 된다.


전시를 이루는 여러 갈래의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이들을 연관하여 바라보게 한다. 누군가 〈몽타주〉로부터 비극적 사건을 떠올린다면, 다시 내려와 마주친 연못 풍경은 수많은 죽음의 은유로 보일지도 모른다. 공백을 드러낸 창과 문은 상실 이후 생경하게 떠오른 일상의 조각이 될 수도 있다. 무엇을 중심에 두고 다른 것을 보는가에 따라 그림들은 다른 맥락을 이룬다.


다시 겨울의 초입이다. 나는 여전히 지난 겨울의 연못을 그리고 있다. 여름에는 멀어지는 과거를 향해 붓질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다가오는 미래를 그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겨울이 깊어지면 연못은 그림과 더욱 비슷해질 것이다. 그러나 결코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글. 임재형

  

* bis기호로 묶인 구간은 두 번 연주한 뒤 다음 마디로 넘어간다. 따라서 하단 왼쪽 악보의 진행은 오른쪽 악보와 같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