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LJI-RO
이미솔 Solo Exhibition
< Days Make Forest >
24. October 2023 - 5. November 2023
숲 가까운 곳에 살게 되면서부터 매일 숲을 그려오고 있다. 내 작업은 오늘 주어진 한 칸에 작은 잎들을 채우고 그 날들이 모여 시간을 담은 숲을 이루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나뭇잎이 모여 숲이 되듯 순간들이 모여 시간이 된다. 하루하루를 모아 숲을 완성하기 위해 나는 매일 비슷한 시간표와 컨디션으로 지내려고 한다. 하지만 숲은 계절의 흐름, 날씨, 작은 생명들의 움직임으로 매일 다른 우연과 변화를 만들어 간다. 하늘과 나뭇가지, 잎 몇 장만 그리는 가뿐한 하루와 작은 붓질을 반복해서 찍어야만 하는 하루, 눈부신 연둣빛으로 채워지는 하루와 채도 낮은 초록빛의 하루, 생활과 그리기가 조화로운 하루와 그리기가 생활을 전복해 버리는 하루. 나의 매일은 비슷하게 흐르는 듯하지만 모였을 때 각기 다른 초록색으로 만들어진 조각보가 된다.
어제를 보내고 오늘을 마주한다. 어제의 붓질은 지나버린 굳은 흔적이 되고 오늘의 비어있는 칸이 나를 기다린다. 가끔 쉬어가고 싶을 때 그림에도 숨 쉴 틈을 남겼다. 첫 번째 칸을 채울 때는 기대감이, 중간쯤 채워갔을 때는 조바심이, 마지막 칸을 남겨뒀을 때는 후련함과 아쉬움이 있었다. 마지막 칸을 채우면 각각의 하루는 하나의 그림이, 숲이 되어 비로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매일 조금씩, 정해진 만큼 그리는 것은 생활과 작업을 함께 세워나가기 위한 방법이다. 숲을 처음 그리기 시작하던 즈음에는 생산성으로 나를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때로부터 시간이 흐른 지금은 무언가 생산해 내는 것으로 스스로를 증명하기보다는, 매일 정해진 무언가를 하는 것, 그럼으로써 계절과 날씨를 감각하고 변화에 적응하는 것으로 세상의 일부인 나를 확인하고 있다. 매일 같은 것을 반복하는 힘, 그런데 매일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기쁨. 그것을 놓치고 싶지 않다.
“분명히 고된 육체노동을 하는 농부가 긴장감에 시달리는 사무직 노동자보다 마음을 훨씬 잘 조절하여 신성에 쉽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1)
내 작업은 육체노동과 정신노동 중 어느 쪽일까. 몸을 통한 행위이기 때문에 육체노동이 있으면서도 생각을 구체화시킨다는 점에서 정신노동이기도 한가? 지금의 나는 작업을 육체노동에 가깝게 하고 싶다. 회사원의 마음이 아니라 농부의 마음으로 작업하고 싶다. 농부가 되어본 적은 없지만, 자연을 감각하고 변화를 받아들이며 만족스러운 노동을 하는 것. 밤이 되면 어둠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하며, 밝아지고 때가 되면 해야 할 일을 하는 농부의 일은 삶에 닿아있다. 오늘을 잘 살고 내일을 기다리는 삶의 모습처럼, 그런 마음으로 소박하고 흔쾌하게 오늘 주어진 작은 칸을 채워 숲을 만들었다.
글. 이미솔
1) E.F.슈마허, 『굿워크』, 느린걸음, 2011, p.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