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NGSAN

주형준 Solo Exhibition


<흰 매가 머물던 자리 >

4. October - 22. October 2023 

[서시]

백야를 꿰뚫는 날갯짓이 입 안에 맴돈다. 세계의 피가 다 빠져나갈 때까지 흰 매가 머물던 자리는 누군가 진실을 고백하는 속삭임, 눈가에 오래된 소원을 묻는 회랑이다. 

주형준의 회화는 깨어서도 꿈꾸는 자의 시선으로 어젯밤 길고 긴 복도 끝에 다다른다. 아득한 바닥에서 사라지는 기억 한줌을 쓸어담는 두 손이 세 동물의 움직임과 마주한다. 검고 회하고 흰 몸, 파충류와 조류와 어류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 몸이 되어 회랑 내외를 가로지르며 솟구친다. 비와 피가 구분 없이 뒤섞이는 농묵과 중묵과 담묵은 꿈(夢)으로 꿈된 세계(理想鄕)를 건설하는 모래이다. 누군가 기도하는 소리를 따라 열주(列柱)와 벽이 굽이치는 가운데 몽상가의 감은 눈은 거짓된 광배를 왕관으로 쓴다. 기이한 회화에서 연극의 주인공은 광대인가, 성인인가. 모래 책장을 넘기는 독자의 발 밑에 꿈이 바스락 거린다. 꿈을 모태 삼아 다시 태어나는 자는 별이 된 자신을 상상한다.

울창한 숲속 컴컴한 그늘에 불시착한 회화는 나뭇가지 너머 휘황한 해질녘을 고독한 눈으로 바라본다. 주형준이 작은 기도실을 지은 지 어느덧 십년이 흐른 나날, 그의 은신처에 어둠이 밀려올 즈음 별 하나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숨겨진 안뜰에서 느슨한 형식으로 노래하는 별은 사람이 되고픈 오래된 소원을 고백한다. 

-글. 백필균


[작가의 글]

나의 작업은 평범한 사람이 가지는 아주 개인적인 소망을 마치 신화 속의 영웅담처럼 그리는 그림이다. 나 자신을 비롯해서 지금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소원의 크기나 무게감이 신화 속 주인공들이 행했던 일들에 비해 가볍거나 사소한 것이 아니라는 나의 문제의식으로부터 형성된 주제의식이다. 나의 작업의 출발점은 소원하는 대상을 시각적으로 드러냄에서 시작되었다. 소원의 서사를 그림으로 그려내는 시간들이 그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노력의 일부라 생각하고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어떤 간절함에 대하여 기도를 하듯 그림으로 나타내고 있다. 시선에 따라 사소할 수 있는 개인적인 소원과 그 소원을 이뤄내기 위한 과정들을 상상하는데 그것을 실현시키고자하는 염원에서 그림으로 그려내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욕망을 실현시키는 과정에서 이야기의 이미지는 비약적으로 과장되고 마치 그것은 설화 속 영웅처럼 신격화시켜 표현한다.

 

인간의 욕망을 감각하는 회화로 자전적 서사와 사회적 기억, 사적 관계의 사람들로부터 소원 이야기를 수집하여 보편적 일상을 조명한다. 신화에서 등장하는 신이나 설화의 영웅, 왕 등 소위 상위 계층의 일대기를 조명한 과거의 종교화와는 달리 나의 그림은 현 시대의 시각에서 보편적인 대중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것은 과거의 계급 계층의 신격화된 이미지를 전복시키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가질 수 없는 대상이나 비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낼 때 그 서사들은 과장이나 축소되어 비약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내가 그려낼 이야기와 그리는 이미지 사이의 간극, 과거의 신격화 되어 표현된 그림과 현재의 보편적 욕망 사이의 전복된 표현들을 조율하고 화면을 배분할 때 큰 흥미를 느끼며 작업하고 있다.

-글. 주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