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LJI-RO
김옥주 Solo Exhibition
< 헬로우 >
1. October 2023 - 20. October 2023
참 이상한 것이, 나는 평소 전통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살고 있는데, 그림만 그리려고 하면 자꾸 내 그림이 얼마나 전통과 연결되어 있는지 신경 쓰인다.
도대체 왜 나는 그림만 그리려고 하면 전통적이 되고 싶은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왜 내가 배운 서구적 매체와 방식을 깨트려서 좀 더 동양적 사고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변형하고 싶은가?
혹시 내 작업을 차별화하려는 충동인가?
혹은 어려서부터 봐 온 것에 대한 익숙함의 발로인가?
혹시 민족적 자존심의 개인적 발현인가?
내가 캔버스에 유화로 빛에 따른 명암의 변화를 의식하며 그린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방식이 기반한 역사가 나와 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질감이 느껴진다.
그럼, 화선지에 먹으로 산수화를 떠올리며 그린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방식이 전제하는 사고방식이 현대인인 나와는 동떨어져 있다. 이질감이 느껴지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럼,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을 조합하는 예술 양식을 개발하여,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이 조합된 인간인 나 자신을 잘 반영하는 그런 작품을 만들면 어떨까?
좋은 생각이다. 그런데, 그림의 양식에서 동서양의 조화를 이루고 싶어하는 인간인 나는, 몇 %가 동양으로 이루어져 있고 몇 %가 서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양적인 면과 서구적인 면은 어떤 방식으로 결합되어 있는가?
내가 살아가는 환경인 한국 사회에서부터 시작해보자. 대통령제, 자본주의, 교육체계 등 사회의 공식적인 체계는 모두 서구적 합리주의에 기반한다. 환경이 개인에게 미치는 지대한 영향을 감안하여 대략 나의 70%가 서구적이라고 정하자.
그런데 근대화가 주체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우리는 모더니티에 대해 양가적 감정을 가지고 있다. 또한 전근대가 전통과 불가분의 관계이므로 단호하게 떨치고 나올 수도 없다.
아마도 그래서 나는 동양적이 되고자 하는 충동을 따라가도 서구적이 되고자 하는 충동을 따라가도 그 매체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이 떠나지 않는다.
나머지 30%에 대해 생각해보자.
위에서 말한 양가적 감정이 집단심리의 힘으로 작용하여 전통-서구화-현대화-전근대 복합체를 형성하고, 사회의 공식적인 체계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서 서로 밀고 당기며 평형상태를 이룬다. 물론 이 복합체는 사회의 공식체계인 서구적 합리주의를 향해 움직이지만, 사회 공식체계와 비공식체계 사이에는 단차가 형성된다.
서양에서는 먼저 사회 구성원들이 개인 중심적이고 논리 중심적으로 사고하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현대화가 진행되었을 것이다. 계몽주의적 합리주의는 그 본질상 동양 특유의 집단적이고 전체를 조망하는 방식의 사고와 깔끔하게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나의, 그리고 우리의, 합리주의는 좀 더 도구적이다. 우리는 동서양의 사고를 잘 조화시켜서 살고 있다기 보다는 이 상황에는 이 카드, 저 상황에는 저 카드를 꺼내 들며, 삶의 내적 논리의 일관성이라는 측면에서 문제를 겪는다. 우리는 다양한 카드를 손에 쥐고 있긴 한데, 마음이 불편하다.
-글. 김옥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