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두 번의 원폭 투하와 함께 제 2차 세계대전은 막을 내렸지만 인류 역사의 한 켠엔 ‘핵’이라는 화두가 자리를 잡았다. 이를 돌이킬 수 없는 종말의 씨앗으로 보고 관련 기술 자체의 폐기를 주장하는 이들도 분명 있었으나 ‘핵의 평화적 이용’을 기치로 내세운 아이젠하우어의 UN 연설에서 보여지 듯 대체적인 흐름은 핵의 ‘활용’에 맞추어져있었다. 이후 원자력 발전은 평화적 이용의 핵심 축으로서, 몇 번의 사고가 있었음에도 우리의 삶 깊은 곳으로 파고들었다.

   원자력 발전은 탄소 중립적이며 경제적이라고 홍보되곤 한다. 그러나 방사성 폐기물의 처리과정 뿐 아니라 기존 원자력 발전소들의 수명이 다해감에 따라 이를 계속운영하기 위해, 혹은 해체하는 과정에서 비용이 발생한 다는 점까지 고려한다면 그 경제적 효율성이란 허상에 가깝다는 의문부호들이 따라 붙는다. 뿐만 아니라 발생가능성이 상존하는 ‘원전사고’들에 대한 피해는 어떻게 계산하고 보상해야하는지, 아니 그 피해를 산술적으로 계산하는 것이 가능 하기는 한 것인지, 사회는 여전히 합의에 이르지 못한 듯하다. 발전을 통한 핵의 평화적 이용 실현이라는 아젠다 역시 고속증식로 시대에 들어서며 또 한 번 위기를 맞고 있다. 한편 기존의 주력 발전원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풍력과 조력, 태양력 등 소위 신에너지원들 역시 부푼 기대에 비해 기존 발전업계와 개발업자들, 각종 이권 문제와 얽혀 순탄치 못한 상황에 놓여있다. 설비 설치와 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 처리, 이로 인한 오염 발생 등 탄소 배출 측면에서 볼 때 오히려 기존 발전원의 대안이 되지 못 한다는 비판 따라 붙기도 한다.

   흔히 접하게 되는 간략화 된 원자의 구조도와 달리 실제 원자는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진 핵 주변을 전자들이 일종의 구름을 이루며 둘러싸고 있는 형태에 가깝다. 일정한 궤도를 따라 핵 주변을 공전하는 전자란 상상 된 도식 속에만 존재 할 뿐이다. 실제 전자들은 전자구름 속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상상되지만 그 존재의 흔적은 남겨진 파동으로만 예측 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종종, 하나의 문제를 둘러싼 논의들 그리고 그 논의를 구성하는 개별의 의견들을 마치 도식화 된 원자 모형 속 궤도 위 전자들과 같이 하나의 차원에서 이해 될 수 있고, 서로 부딪힌다면 종래엔 한쪽이 다른 한쪽을 무찌를 수도 있는 관계에 놓여있다고 여겨버리곤 한다. 그러나 정치적 입장, 경제적 이권, 개인적 신념 등 수많은 요소가 중첩 된 공론장 속에서 펼쳐지는 논의란 숫제 확률적 차원에서만 계측되는 전자구름, 그 속을 떠도는 전자들에 가깝다. 그 중심에는 분명 ‘핵’이 존재하지만 주변을 떠도는 논의의 내용, 주도하는 주체, 심지어 이를 지각하는 우리의 감각은 마치 전자구름 속의 전자들처럼, 하나의 단면이 아닌 입체의 공동 안을 부유하며 각자의 파동을 만들어낸다.

   인간의 한정된 인지 자원은 우리로 하여금 불확정의 존재성을 감내해야만 하는 전자구름과도 같은 사회적 논의의 다층적 면모를 쉽게 외면하도록 유도하곤 한다. 그리고 이러한 맹점을 이용하는, 논리적 오류들을 앞세운 선전은 인류사 곳곳에서 작동해 왔다. 현실과 우리의 지각 사이의 괴리는 언제든 일정 수준에서 존재해왔다. 그런데 단편화 된 원자모형과 실제 원자구조 사이의 괴리와도 같은 이 유구한 인지적 맹점은 웹 환경과 알고리즘을 타고, 기존과는 다른 속도와 방향성, 새로운 양상으로 그 세를 확장하고 있다. 

   개개인이 접할 수 있는 정보는 그 어느 시대보다 넘쳐나고 있고 구성원들의 이해관계역시 그만큼 분화되어 각자의 방향으로 뻗어나가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 과잉의 시대상과 조응하며 알고리즘의 블랙박스에서 재생산 된 정보들은 그 전달과정 속에서 열화 될 뿐 아니라 발화의 주체조차 모호하게 지워지며 마치 하나의 목소리처럼 작동하고 있다. 수많은 출발점에서 들려오던 각각의 목소리는 가공 된 기계음으로 단편화 되고, 수 겹으로 구성 된 논의의 맥락들은 점점 압축되어 양 극단의 평면으로 낙하한다. 

   ‘핵’을 둘러싼 논의들, 나아가 기후와 인류 생존 환경의 위기 문제 역시 이런 현실의 맥락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아니 오히려 동시적으로 감각되는 위기에 기한 대중의 불안을 타고, 상상된 납작한 전자 궤도들은 손쉽게 자리를 차지해나가고 있다. 알고리즘 블랙박스에서 뻗어 나온 궤도 위에서 상상되는 미래는 다만 어제와는 다른 오늘일 것이란 추측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란 불안 속에서 본 전시는 출발한다. 

   단순한 불안과 갈등의 재생산을 넘어서기 위해선 서로 모순되어 보이지만 동시에 성립할 수 있는 의견들의 존재 방식을 이해하고, 하나의 현상을 두고도 발생하는 수많은 불일치의 단면들을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이해의 끝에 어떤 의견을 취하게 되 든, 우선 존재의 불확정성을 견디며 ‘구름’안에 있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즉 전자의 위치를 예측하고, 그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선 끊임없는 계측과 노력이 투입이 되어야하고 그럼에도 완전한 관측, 완전한 이해는 불가하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우리는 남겨진 파동에 조차 닿지 못한 채 그저 피상적으로 상상 된 궤도 속을 맴도는 것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비핵화선언>은 하나의 의견, 하나의 길을 세우기보다 우리가 서 있는 구름 그 자체를 그려보려는 시도로서 기획되었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라는 국가적 선언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비핵화’ 된 적 없다는 현실, 유일한 2번의 원폭투하 피해 국가임에도 수많은 원전이 세워진 일본의 상황 등 핵을 둘러싼 모순적 현실을 각자의 시선에서 선제적으로 대응해온 작가들의 작업을 빌어 하나의 현상을 둘러싼 전자들 개략적인 모습을 그려보는 한편 생태주의 등 또 다른 접근 방식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구름 전체를 구조화해보고자 한다.  

   총 2회에 걸쳐 이루어지는 이번 전시 중 1차 전시는 특히 도서관에 터잡아 진행되며 길을 그려보는 시도로서 작가들의 시선이 정립 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을 전시한다. 시각예술작업 뿐 아니라 도서, 연구 자료 등을 함께 제시한다. 그리고 이를 출발점으로 삼아 관람객들이 직접 갤러리 너머의 정보를 탐색하여 전시를 완성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비핵화선언>은 완성된 작업들과 함께 11월 2차 전시로 이어질 예정이다. 




  • 전시 일정 / 2023.9.14 - 10.1 
  • 운영 시간 / 주중 11 - 18시

                       주말 13-16시

                       *9월18, 9월28 -9월 30일 추석기간은 도서관 휴관일로 전시장 역시 휴관입니다. 

  • 장       소 / 서울시 용산구 소월로 109 남산도서관 갤러리 1층



강홍구 


강홍구 작가는 ‘사진회화’를 통해 사진과 회화의 융합적 변주, 시각 이미지 실험을 이어왔다. 특정 사건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깊게 들여다보고, 자신의 말로 다시 조합해내는 과정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작업들은 그 표면적 이미지 너머 이를 들여다보는 스스로의 시선 역시 되돌아보도록 관람자를 이끈다. 원자력 발전 이슈 뿐 아니라 논쟁의 출발점으로서 핵무기 문제 등을 오랜 시간 다뤄온 작가의 작업들을 살펴보며 사회에서 미술의 역할을 다시금 돌아본다.

김지민 @jeemin_art


김지민 작가는 회화와 사운드, 조명, 키네틱오브제 등을 활용한 토탈 인스톨레이션 작업을 통해 경험 되지 못한 지나간 문명이 남긴 기억, 기록 사이의 단차를 드러내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 된 신작 작업은 방사능 사고 이후 붉게 물든 채 정지되어 버린 ‘붉은 숲’, 그 안의 나무들로부터 출발한다.  나무의 늘 푸름이 생명의 기운을 예시한다면, 붉은 숲을 이룬 ‘붉은‘ 나무들은 사고의 순간 이미 그 생명을 다했음에도 부패를 도울 하는 미생물들조차 모두 사라져 죽음 그 자체로 남아있다. 아주 조금씩 풍화 될 뿐 사라지지 못하는 존재를 통해 ’핵‘이 우리에게 남긴 흔적을 탐구한다.


Area Park 


현재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작가는 2011년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의 상황을 사진으로 기록해왔다. 지진과 해일이라는 자연 재해로 시작되었으나 이어진 폭발 사고는 인재에 가까웠고 이후의 사회, 정치적 대처의 미흡함, 정보의 차단 등으로 수많은 혼란이 야기되었다. 이를 직접 경험 한 작가는 사건을 렌즈 안에 직설적으로 담기보다 오히려 일정한 거리와 시차를 두고 그 주변부를 탐색하듯 전달하길 택한다. 공포와 불안의 상징이 된 바다, 일상이 회복되지 못한 텅 빈 거리, 화재로 불타버린 채 남겨진 학교 안의 물건 등 작가가 택한 소재들은 재난이 단 한 번의 사고로 종결 된 것이 아니며 수많은 단면에서 진행 중임을 드러낸다.

백정기 


백정기 작가는 다양한 과학적 원리와 기술을 작업에 녹여내 왔다. 다양한 방향에서 ’과학 기술‘을 끌어들이지만 그 기술이 그려내는 풍경은 현대사회에서 ’기술‘이 통상적으로 표지하는, 과학상상화 속 그저 행복하기만 한 미래를 흉내 내지 않는다. 메마른 도시의 비는 냉방기에서 내린다는 ’기우제‘의 도입에서 보여지 듯 작가가 포착해내는 것은 기술 발전에 대한 낙관주의가 깊이 뿌리 내린 현대사회의 틈새에 가깝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 틈새를 발견해 가는 과정, 시선의 형성 과정을 돌아보고자 작업 과정에 대한 기록과 함께 작가의 초기작을 함께 전시한다.

신정균 


신정균 작가는 영상과 설치작업 위주로 한국 사회의 실재와 허구, 현재와 과거를 녹여낸 서사를 적극적인 편집의 과정을 통해 펼쳐낸다. 다큐멘터리, 때론 모큐멘터리라 명명되는 영상 작업은 재현과정에서 작가개입이 불러오는 현실과의 불일치성의 감각을 인지시킨다. 그 감각 속에서 우리 사회에 내재된 불안감 내지 이념을 인지하는 개개인의 입장 차이와 기억 사이의 불일치가 드러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사용하지 않는 취수장을 대피소라 가정하고 그 가능성에 대한 전문가의 인터뷰를 재구성하여 영상을 구성한다. 관람객은 함께 배치된 오브제와의 연관 관계 등을 추적하게 된다.

이승택


이승택 작가는 1950년대 <역사와 시간>을 발표한 이래 꾸준히 기성 제도 내 통용 되는 개념에 균열을 내는 시도를 이어왔다. 80년대 중반 이후 사회, 역사, 환경 등 삶의 영역으로 관심의 지평을 확장해나가는 한편 작업 방식 역시 퍼포먼스, 대형설치, 사진 등으로 다변화 되어왔다. 현대 한국 미술계를 관통해온 작가의 작업은 시대와 조응하며 확장되어온 세계관을 담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작업과 그 과정들을 통해 시대와 조응하는 작가의 시선을 돌아본다.

이재욱


이재욱 작가는 사진을 통해 장소에 얽힌 기억을 읽어내는 한편 매체로서 사진이 가지는 ’보이게 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을 담은 작업을 이어왔다. 사실보다 더 사실 같은 풍경이 기술로 구현 가능해진 시대지만 여전히 ’사진‘은 셔터가 열리고 닫히는 그 순간 작가가 그 곳에 있음으로서 성립한다. 만약 장소적 현현이 불가한 대상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면, 사진작가는 어떤 방식을 택할 수 있을까. <Inner Safety II>작업에서 작가는 관광객 등에 의해 촬영 되어 유출된 북한의 이미지를 수집하고 이를 다시 특수코팅으로 시야각을 제한한 액자에 담아 연출한다. 우리가 닿을 수 없는 시점, 금지된 장소를 담아내는 작가의 작업을 통해 핵을 둘러싼 담론들의 방향성과 갈등의 한 축을 살펴본다.

정재호 


정재호 작가는 2000년대 초반부터 다큐멘터리적 방법론으로 도시를 관찰하고 이를 화면에 기록하고 있다. 다큐멘터리적 관찰에 기반 하나 관찰 된 풍경은 회화로 옮겨지는 과정에 작가만의 방식으로 편집되고 재조립된다. 특정 도시, 특정 풍경을 담았음에도 작가 특유의 화법을 통해 하나의 풍경은 또 다른 도시의 일면들과 공명하며 다양한 메시지를 비춰낼 수 있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한다. 각각의 풍경 앞에서 관람객은 스스로 무엇을 발견하는지 돌아봄으로서 자신이 동시대 풍경을 바라보는 방향성을 되짚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주하


정주하 작가는 땅 – 물 – 불로 이어지는 프로젝트 사진 작업을 통해 사회의 단면들과 그 단면이 보내는 신호들을 포착해왔다. 원자력 발전소 주변 마을의 일상적 풍경을 담은 <불안, 불-안> 시리즈를 통해 잠재적 위험과 평화로운 일상의 아이러니를 포착해냈던 작가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현장을 방문해 재난이 스며든 익숙하지만 낯선 일상의 풍경을 담아낸다. 1차 전시에서는 사전 답사, 작품 제작 과정 등에서 촬영 된 스냅 사진과 전시 당시 대담 자료집 등을 통해 작업 과정에 담긴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는 여로를 마련해보고자 한다.

최선 @ssuny_ch


최선 작가는 미술의 사회적 의미, 미술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출발한 다양한 작업을 선보인다. 사회에 공유 된 의식 속 첨예한 대립점에 놓인 주제들을 탐구하고, 동시대인들이 자신의 가치를 찾아가도록 돕는 작업을 추구한다. 그리고 개인적인 관심과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우리가 세계와 마주하고 있는 이슈들로 확대되는 작업들은 과거에서 출발하지만 현재에까지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다. 작가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과 그 시선 속에서 발견 된 주제들이 과거에 걸쳐 이어지는 과정을 따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