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LJI-RO


서혜영 Solo Exhibition

<Thomson #>

22. Apr  - 10. May 2020



isola project III



바둑은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두 사람이 흑·백의 바둑돌[碁石]을 나누어 갖고 번갈아 가며 임의의 점에 돌을 놓아 수법을 겨룬 끝에 차지한 '집[戶]'의 다소에 의해 승패를 결정한다. 완전한 집이 두 집 이상 있어야 살며, 집을 많이 차지한 사람이 이기는 바둑에서의 집은 같은 색의 바둑돌로 둘러싸인 빈 점의 영역을 뜻 한다.
이 빈점은 상대편이 들어올 수 없는 빈자리이며 자신의 돌로 담을 쌓은 성역화된 공간이다

집을 지을 때 처음에는 서로 다른 공간에 터를 잡더라도 나중에는 충돌하는 접점의 공간을 두고 벌이는 다툼의 경계선에 서게 된다. 결국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모두 막아 자신의 집을 많이 만드는 것이 승리의 조건이다.

그 동안 서혜영의 isola project는 수학적 규칙과 연산을 바탕으로 공간에 대한 인식의 해석을 중시하였다면 이번 isola project 3은 을지로라는 특정 지역의 역사와 지정학적 위치, 그리고 현재 진행중인 재개발 상황을 유기적으로 중첩하는 서혜영의 3번째 프로젝트이다. 도시는 끝없이 증식하는 유기체와 같다. 성장하고 확장하고 쇠락하고 멈추기도 한다. 한때 을지로는 국가주도의 도시개발을 위한 핵심이 되어 입체적 도시계획과 야심찬 건축물들이 지어지려 했으나 혼돈의 시기는 이 같은 의지를 미완의 프로젝트로 남게 하였다. 결국 체계적인 성장이 아닌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서울 한가운데 자급자족의 생산적 기능을 가진 산업 유산의 장소를 만들어 내었다. 이제는 세월의 흔적을 기억하는 오래된 경험과 축적된 시간들이 이곳을 지켜온 사람들의 독특한 네트워크로 자리 잡아 새로운 문화적 공간을 만들어 내며 다양한 가능성을 지닌 여백의 공간이 되어 가고 있다.

도시는 성장을 멈추면 사라지게 된다.
모든 길을 열어둔 공간으로
지금은 없어졌지만 남은 흔적으로 남지 않기를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다툼의 경계선에서의 도시는 위태롭다.

isola project - isola는 이탈리아어로 ‘섬’을 의미하는 여성형 명사
고립과 분리를 의미하는 영어의 isolation에서 온 island를 뜻함

전통적인 미술관의 페쇄적 구조에서 벗어나 일상을 예술의 전시공간으로 확장한 형태의 작업.일상의 장소에서 진행되는 isola project는 기억과 경험으로 한 사람에게만 귀속되는 닫힌공간이 아닌 소유와 공유의 간극과 경계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공간이다.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다. isola project 는 잠시 그곳을 점유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