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a Park solo exhibition
<혹성에서>
14 - 30. Oct. 2022


사진은 무엇이 되었을까



텍사스를 출발해 플로리다를 향해 10번 국도(EAST)를 달린다.끝도 보이지 않는 직선도로를 달리다보면 이 운전이 현실인지 시뮬레이션인지 몽롱해진다.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맥주광고에 이내 갈등을 시작한다.졸리는 몸을 다잡고 흔들리는 맥주생각에 나의 렌트카는 국도변의 싸구려 모텔에 들어간다.주유소 편의점에서 샤무엘 아담스를 두병 사들고 침대에 눕는다.노트북을 꺼내 이멜을 확인하고 사진 한 장을 전송하다 지쳐 나는 잠이 든다.


지난 10년 간 내게 벌어진 일중 가장 충격적인 일은 무엇일까.나는 결혼을 했고 일본으로 왔다.대지진을 겪었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좋은 미술관에서 전시를 잇달아 했고,작품도 제법 팔렸고 작업실도 짓게 되었다.이렇게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나에게 가장 충격적인 일은 어머니였다.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어머니의 치매 진단이었다.그것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이 자연스럽게 늙어간다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으로 사람의 기억과 행동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남은 혈육인 나와 형은 만날때마다 대책을 세웠고 고민을 거듭했지만 어머니는 점점 기억을 잃어가셨고 운동신경과 증세는 심해져갔다.집을 찾지 못하는 것은 물론 온갖 물건들을 잃어버리고 다녀 결국 요양병원에 입원했다.간혹 휴가를 얻어 호텔이나 콘도에서 놀때도 화장실 문을 열어놓아야 했다.어머니가 조금이라도 정신이 있을 때 사진을 촬영할 준비를 하자 그녀는 거울을 보며 머리를 빗는다.본능일까


근래에 사진은 모두의 것이 되었다.어떤 준비나 마음가짐 없이도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찍을 뿐 아니라,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이미 그 행위 자체가 너무나 자연스러워져 눈을 깜박이거나 손을 흔드는 것처럼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된 것이다.그건 아마도 기술의 진화로 사람들의 휴대폰이 스마트폰으로 바뀌면서 찍고 SNS에 올리는 양방향 소통이 가능해진 까닭에 연유하지 않나 생각된다.자신의 우쭐한 모습을 SNS에 올려 환호 받는 행위는 물론이고,우리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 키우는 고양이의 재롱을 보며 순간을 영위한다.


기술의 진화는 많은 것을 바꾸었다.특히 사진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우선 한번 촬영한 것을 손쉽게 지울 수 있게 되었다.자신이 찍었던 것을 선택해서 지울 수 있는 기능은 놀라운 것이었다.화면이 흔들렸거나 노출이 부족하거나 하는 기술적인 결점은 물론,촬영대상이 눈을 감았다던지 자신의 일그러진 표정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을 간단하게 지울 수 있게 된 것이다.지울 수 있다는 점은 일단 많이 찍고 보자는 생각을 주입시켰다.많이 찍어 가장 잘 나온 것을 고르면 되기  때문이다.또한 필름의 시대와는 확연히 달라진 점이 하나 더 있는데 그건 방금 찍은 사진을 지금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 점은 프로사진가에게 얼마나 큰 안도감을 주는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다.촬영 장소가 멀고 먼 오지였을때,촬영 대상이 특급 유명인이었을때,한번 밖에 없는 행사나 자연현상이었을 때 찍고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기술은 눈물 날 지경으로 고마운 기술이었다.


나는 아직 필름카메라를 쓰고 있다.부끄럽지만 실력이 들쑥날쑥해 사진이 잘 나올지는 아닐지는 필름을 현상하기 전까지는 여전히 조마조마하다.이런 불편함에도

내가 시대의 흐름과는 반대로 가고 있는 이유는 사진을 대하는 자세의 문제와 물성에 대한 믿음에 기인한다.필름 가격의 상승과 그 제반여건의 어려움도 있겠지만 우선 나는 작업량이 현저히 줄어들었다.일년에 채 백장도 찍지 않는 사진가가 된 것이다.대신 한 장을 찍기 위해 그만큼 신중해진 것이다.한장을 찍기 위해 몇 시간을 몇 일간을 관찰하기도 한다.변해가는 빛에 따라 달라지는 장면들을 보다보면 마음이 혼미해질때도 있지만 이런 사진이 만들어지겠다는 확신이 생기기도 한다.이제 하루 한 장 정도의 페이스로 사진을 찍지만 그걸로 전시하고 책내고 일하고 하기에 충분하다.그 말은 우리는 너무나 많이 찍고 많이 보고 지우는 일에 익숙해진 것이다.


배운 게 사진이라 사진가로 살게 될 줄은 알았지만,10년전만해도 이처럼 미술관에서 전시를 하는 작가의 형태로 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하긴 10년 동안 사진 분야에서 이렇게 디지털 기술이 진보할 줄은 누구도 몰랐으니까.우연히 백투더퓨쳐를 다시 보게 되었다.정답은 아니더라도 미래에 대한 위안 정도를 기대했는데 결국 지나가는 동영상 이미지는 더욱 머리를 복잡하게 할 뿐이었다.20년을 넘게 사용한 카메라는 처음처럼 충실하게 그 기능을 소화하는데 불과 5년 된 노트북은 왜 이리 징징거리는지.

결국은 책에서 찾게 된다.그 사람의 인생,경험,기억.나는 결국 텍스트에서 해답을 찾게 된다.이미지란 모호하기 때문이다.우리가 힘들 때 찾게 되는 것.종교,혈육,자연,본능...내가 겪은 걸 다른 사람도 겪었을까,내가 먹은 걸 그도 먹었을까,내가 본 걸 그녀도 보았을까..지극히 이기적이지만 어머니는 다시 건강을 되찾아 예전처럼 나를 꾸짖고 싸우고 화해하고 볼을 비빌 수 있을까.


사람이 느끼는 시간이란 상대적이다.이런게 양자역학의 기본일게다.

근본이 없으면 방향감각이 생길 수 없다.기술은 이만큼 진보했는데 최근 카메라를 든 자들의 윤리가 어디쯤 당도했는가를 생각해보자.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명목으로 필름이라는 나침반을 쥐고 살고 있는 나에게 스마트폰에 내장된 나침반을 강요하지 마라.시대의 흐름이라는 자본주의의 권유로 개개인의 삶의 방식까지 침해당하는 오늘 나는 다시 녹슨 나침반을 움켜쥐고 이리저리 방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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