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근 Solo exhibition

<틈 chasm>

22. Mar - 10. Apr  2022


나의 아버지는 개발도상국 출신이다. 한국 전쟁 직후 충청도 영청골에서 태어나 지금껏 그 자리에 사신다. 친족들이 담을 맞대고 살던 마을은 모두가 가난했다고 들었다. 아버지의 어머니는 고기가 생기면 모두가 잠을 자는 밤에 자식들을 깨우셨다고 한다. 한번은 이웃의 눈을 피해 한밤중에 온 가족이 작은 방에 둘러앉아 문을 닫고 도둑질 하듯 닭백숙을 드셨다고 했다. 


시골에 살면서 배를 곯지 않게 된 것은 1980년대 이후였다. 열심히 농사 짓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던 1970년대 가족계획 방침에 따라 자식은 아들 둘만 두셨다. 부모도 평생 모셨다. 음악과 산을 좋아했고 넓은 세계에 대한 호기심도 컸지만, 가족과 부락, 국가가 개인 ‘박제면’보다 중요했다. 가족을 건사하며, 국가 발전을 위해 나라에서 정한 농업의 역할을 군말 없이 담당했다. 버스도 들어오지 않던 영청골에 도로가 나고, 게이트볼 구장 같은 시설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아버지가 젊은 시절을 지나던 개발도상국의 끝자락에 태어났다. 어릴 적에는 흙집에 살았다. 잠을 자려고 무겁고 두꺼운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고개를 내밀면 하얀 입김이 호호 나오는 집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집이 가까워지면 동생과 서로 등을 밀면서 다퉜다. 집에 들어서다 할아버지 눈에 띄면 소 여물 쑤는 일을 떠맡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의 어머니가 청주 큰 백화점에서 옷을 사다 나를 입히셨던 것은 선진국을 향해 질주하던 들뜬 경제 덕이었다. 시골에서 곱게 자란 나의 젊음은 자유가 넘쳤다. 자식 교육을 위해 어떤 것도 내놓을 준비가 되셨던 아버지의 등을 밟고 선 채, 나는 ‘사진합네’ 하며 세상을 마음껏 탐험했다. 


주워들은 것이 쌓일수록 아버지와 충돌하는 일이 많아졌다. 가난에서의 해방을 이끌었던 박정희 대통령은 아버지 삶에서 지금껏 절대 선이다. 자식을 향한 부정이 애끓는 분이시지만 정치관만큼은 타협이 없으셨다. 지금도 아버지는 가족 안에서 외롭게 완고하시다. 노여움에 돌아앉으신 아버지의 등 앞과 나 사이 ‘틈’이 있다. 


태극기는 ‘틈’ 너머 아버지 세대 영토의 수호기이다. 깃발은 ‘너희는 상상도 못할’ 지나온 시절에 대한 두려움이다. 보편적인 가난과, 폭력으로 귀결되던 수많은 구분들이 강요되던 시절을 아까운 자식이 하릴없이 겪게 될까 두려워 아버지는 태극기를 든다. ‘공산주의는 위험하다, 아들아. 거기 서지 말아라.’ 


깃발은 아들의 인정을 원하는 시위이다. 아버지는 이를 악물고 어려운 시절을 버텨냈다. 좁은 땅 도처에서 개발을 해대던 통에 엉겁결에 돈방석에 앉게 되는 일이 흔하던 시절의 힘을 입기도 했다. 아버지의 수고는 당신보다는 아들이 사는 세상의 풍요를 일구었다. 그런데 없는 살림에도 꺾이지 않았던 아버지의 교육열 덕에 주워들은 것이 많아진 나는, 아버지의 수고로움을 인정하기는커녕 ‘무식하고 말이 안 통한다’며 아버지의 속을 후벼 판다. 아버지와 나 사이 틈이 커진다.


나의 아들은 선진국 출신이다. 자본이 만들어낸 영웅이 되어 집에서도 가상세계에서도 적을 무찌르느라 분주하다. 나와 아들이 사는 ‘선진국’을 아버지가 예전에 상상하지 못하셨을 것처럼, 나는 아들이 어떤 세상을 살게 될지 모르겠다. 아버지가 마당에 심으신 보리수나무에 올라선 나의 아들은 내가 먹던 것과는 다른 보리수 열매를 먹을 것이다. 그리고 나와 아들 간에는 새로운 ‘틈’이 길게 놓이겠지.



마지막으로. 가족의 모양은 모두 다르다. 뜬금없이 가족애나 효를 강요할 생각은 없다. 그저 내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한 나의 노력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