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 김라연, 박예나, Interrobang(이승미, 양화선, 문소영, 김영삼), 황민규

지금은 과거가 될 수 있을까 The Continuous Present

상업화랑 기획전

기획: 김명진, 김소희

10 Mar. - 11 Apr. 2020

Eulji-ro


모두 지금이 지나가기를 기다리지만, 바이러스가 만든 현실은 여전히 과거가 되지 않았다. 우리가 지나간 과거라고 여기는 재난의 경우에도 ‘타인의 재난’이라 외면할 수 있을 뿐 남겨진 상흔은 쉽게 ‘지나가지’ 못한다. 그리고 누구도 타인의 재난이라 할 수 없을, 코로나 이후 지속되는 팬데믹(pandemic)은 모두가 적응해야 할 일상이 되었다. 우리는 지금을 극복하고 과거와 닮은 미래를 회복할 수 있을까? 혹은 이것이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하는 거대한 전환점(paradigm shift)임을 받아들여야 할까? 섣불리 정의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지금은 정리되지 않은 말들의 파편들로 간신히 파악된다.

 

좀처럼 지나가지 않는 ‘지금’에 대해 질문하는 이 전시는 재난과 일상의 감각을, 그리고 예술과 웹 아카이브 사이를 가로지르는 작업들을 소개한다. “지금은 과거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팬데믹과 재난의 차원에서, 매체에 의해 재편된 시간의 차원에서 중의적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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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연대기적인 시간은 매체에 의해 서로 혼용되어 있다. 매체에 의한 시간의 재구성은 초기 사진으로부터 오늘날의 사이버스페이스까지를 가로지르는 주제다. 롤랑 바르트는 사진이 ‘언젠가 존재했던 것들의 흔적’들을 현재로 불러온다고 보며 이를 “과거의 현실들이 유출”되었다고 표현했다. 또한 벤야민은 이미지가 과거와 현재를 병치할 때 “그때와 지금이 번개의 섬광처럼 들어오는” 인식을 가능케 한다고 보았다.

 

사진이 재난을 다룰 때, 과거의 폐허에서 무엇을 현재로 건져 올릴 것인가? 박진영의 사진은 가장 충격적인 장면을 기록하는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충격적 순간 이후에 남겨진 일상적 풍경들과 잔여물들을 불러 온다. 3.11 쓰나미와 후쿠시마 원전 폭발은 ‘재앙의 원천’으로서의 바다를 선명히 인식하게 만든 사건 중 하나다. <Moving Nuclear> 시리즈는 2013년 후쿠시마 앞바다를 거쳐 대만, 필리핀, 베트남, 싱가폴, 인도네시아, 적도를 거쳐 다시 제주로 돌아오는 항해의 여정을 기록한 것으로 지구를 돌고 도는 원자력 오염수의 보이지 않는 흔적을 추적한다.

 

경계가 없는 물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황폐함이 땅에서는 보다 선명하게 나타난다. 도시 환경의 이면에 주목해 온 김라연의 회화는 반복되는 재개발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현상인 ‘비어 있는 풍경’을 보여준다. 오래된 풍경과 새로운 풍경 사이에서 재개발 현장의 망각된 사물들이 방치되고 황폐해질 때면 무심하게 자라난 식물들과 뒤섞이며 새로운 인공-자연을 형성하기도 한다.

 

비어 있는 풍경은 오늘의 조용한 재난을 닮아 있다. 조용히 우리가 숨 쉬는 공기를 잠식하고 ‘비대면’의 시기를 지속하게 하는 재난. 그리고 이제 가상공간은 누구도 ‘가짜’ 현실이라 부를 수 없을 현실 그 자체가 된다. 황민규의 모큐멘터리(mokumentary) 영상에서는 가상과 현실, 시나리오와 실제상황이 혼재하며 작가의 실제 경험과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사들이 자연스럽게 뒤섞인다. 인류의 크고 작은 위기, 그리고 전지구적 바이러스는 절망과 희망 속에서 다시금 만화적인 영웅의 존재를 추구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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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에 의해 오프라인 공간의 밀도가 느슨해진 가운데, 웹의 지극한 활성화는 예술의 위기 혹은 기회로 읽힌다. 보리스 그로이스는 인터넷상의 예술을 아트 아카이브와 동일시하며 ‘선형적 역사의 맥락으로부터 떨어져 지속적인 현재로 남을’ 수 있는 가능성으로 보았다. 현재-과거의 간극이 사라진 자리에 동시성이 등장하고, 웹상에서는 고정된 최종산물이 아니라 계속해서 갱신되는 과정의 도큐멘테이션이 곧 예술 작업이 된다.

 

인테러뱅(Interrobang)과 박예나의 작업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인테러뱅 프로젝트’는 재난 상황 가운데 웹 아카이브의 가능성을 극대화한다. 이 웹 사이트(interro-bang.org/)는 코로나 이후 나름의 방식으로 위기를 직면해 온 다양한 창작자들의 인터뷰를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인테러뱅은 여러 예술가들의 창작 기회가 지연된 가운데, 그들의 미완결된 작업과 이야기들을 공유하는 것 자체에서 이 시기의 ‘?!’를 함께 돌파해나갈 하나의 방식을 찾는다. 웹 공간에서 ‘예술 아카이브(Art Archive) = 예술(Art)’이라는 그로이스의 공식이 성립할 수 있다면, 흩어진 목소리를 모아 들려주는 새로운 방식을 고안하는 것 자체가 오늘날의 예술이 될 것이다.

 

박예나의 <Dead Skin Cells of the Earth>에서 오프라인-도시의 쓸모없는 폐기물 조각들은 무심히 사라지는 대신 3D스캐닝을 통해 부활하여 웹-우주를 떠돌아다니는 오브제로 남는다. 가상 환경 속에서 다각도의 관찰이 가능한 이 폐기물 잔해들은 새로운 세계의 땅을 형성할 물질들이기도 하다. 인공 구조의 지속적인 붕괴와 재발생의 가능성을 탐구해 온 작가는 폐허가 된 지금을 딛고 도래할 미래의 전초전을 본다.

 

재난과 일상 사이, 과거-현재-미래로 흘러가는 시간과 매체에 의해 ‘지속되는 현재’로 재편된 시간 사이, 예술 현장과 온라인 아카이브 사이, 그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어디쯤에 우리는 서 있다. 과거와 현재의 재난이 겹쳐지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중첩되는 이 공간에서 결코 하나로 정의되지 않을 지금의 면면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글. 김명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