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미 JEONG MI YOON

공간-사람-공간

 5 Mar - 7 May  2017

Eulji-ro

공간-사람-사물-공간¹

 : 윤정미의 보편과 특수 사이 

 

<공간-사람-공간>(1999-2002) 연작은 서울의 몇몇 지역(내곡동, 인사동, 청계천)의 상점 주인들을 찍은 다큐멘터리 연작이다. 작업의 출발은 《내곡동의 인물과 풍경》(2000)이라는 전시였다. 지역민과의 유대감을 조성하고 예술과 대중의 거리를 좁히자는 취지에 부응해, 작가는 내곡동 주민들을 찍기로 결심했고 슈퍼마켓, 정육점, 농원, 문방구 등 각자의 삶의 터전을 배경으로 증명사진을 찍듯 인물을 촬영했다.² 같은 해 《텍스트 타워-인사동 판타지》전(2000)에 참여하면서 작업 대상은 인사동 일대의 상인들로 확대되었고, 이후 청계천, 을지로 일대의 상가까지 포함되면서 작업은 하나의 연작의 꼴을 갖추게 되었다.

 

외견상 <공간-사람-공간>은 아카이브나 다큐멘터리 혹은 유형학을 연상시킨다. 정방형 프레임의 꽉 찬 구도, 동일 크기의 인화, 일터에 상인들을 세워놓고 찍는 연출법, 특별히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중립적인 시선, 피사체와의 거리감, 무엇보다 한 동네의 상인들을 반복적으로 촬영해 축적과 나열로 지역성을 뽑아내는 방식이 그러한 연상의 근거다. 더욱이 작가의 대표작들이 모두 유사 아카이브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으니, <공간-사람-공간>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읽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초기 대표작인 <동물원>(1998-1999)은 교육과 유희라는 인간의 목적에 따라 수집, 분류, 관리되는 동물원이라는 근대 재현 장치의 이데올로기를 드러냈고, 미국 체류 중에 찍은 <뉴욕 공립 도서관의 한국>(2004)은 뉴욕 공립 도서관의 공문서 보관소에 소장된 한국 관련 자료의 분류 방식을 드러내는 메타 아카이브적 작업이었다. 가장 널리 알려진 <핑크-블루 프로젝트>(2005-) 역시 젠더에 따른 색 구분이 시대, 인종, 문화, 자본과 어떻게 관여되는지를 조사한 일종의 준(準)인류학적 아카이빙 작업이었다. 이들 작업이 연작이라는 방식을 통해 일종의 동질적 담론 체계를 상기시키는 것은 사실이나, 그녀의 작업을 거대 서사로만 읽는 것은 많아야 절반의 독해만 가능케 할뿐이다. 윤정미의 사진들은 보편성의 범주로만 환원되지 않는 특수성의 자취들이 자기주장을 하는 작업이고, 아카이브의 객관성과 전형성에서 벗어나는 여러 표지들을 지닌 묘한 양가성을 지니고 있는 까닭이다. <공간-사람-공간> 역시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우연이겠지만 ‘공간-사람-공간’이라는 작업의 제목은 이 연작이 지닌 중간적 성향을 대변한다. 내곡동의 ‘주민’을 찍는데서 출발했지만 <공간-사람-공간>은 인물사진인지 공간사진인지가 모호하다. 사진에서 인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작업은 명시적으로 기념사진을 표방하고 있고 상인들은 상점의 주인으로서 가게를 대표하고 있지만, 이미지를 압도하는 것은 물건들(그리고 그것이 쌓인 공간)이다. 산처럼 쌓인 수수십종의 금속 부품, 각양각색의 문고리, 온갖 호수의 붓, 형형색색의 한지는 보는 이의 시선을 강탈하며 물리적 스펙터클을 자아낸다. 여기서 인물은 자신이 파는 물건에 함몰되어 그 일부로 보인다. 인물보다 사물에 초점을 맞춘 것은 작가의 의도다. 일차적으로는 좁은 공간에 밀집한 물건들의 집적이 시각적 흥미를 끌었을 테고, 이차적으로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진열하기 위한 상인들의 노하우와 분류 방식이 개념적 흥미를 유발했던 듯싶다. 사진의 형식은 이러한 의도를 충실히 지원한다. 6x6 포맷의 정방형 프레임은 밀집도를 높여 꽉 찬 느낌을 강화하고, 40mm 광각렌즈는 좁은 실내 공간에서 원근감을 살리고 최대한 많은 물건을 담아내는데 기여한다. 또한 허리 높이에서 촬영하는 핫셀블러드 카메라의 특성은 낮은 시점으로 인해 배경에 사물이 더 많이 들어오게 만든다. 조리개 역시 최대한 조여져 사진의 구석구석, 물건 하나하나가 선명히 보이는데 일조한다. 그 결과 인물은 마치 공간 속 사물처럼 배경에 자연스럽게 묻혀 환경의 일부가 된다. 공간-사람-공간은 공간-사물-공간과 치환되며 끊임없이 진자운동을 한다.


 <공간-사람-공간>이 한편으로 인물사진과 정물사진의 경계를 흐린다면, 다른 한편 이 작업은 스냅사진과 기념사진의 중간이기도 하다. 인물이 가게의 역사와 취급품목을 대표하고 있고 사진이 이 항구적인 대표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찍혔다는 점에서, <공간-사람-공간>은 기본적으로 기념사진의 범주에 속할 것이다. 작가는 개성을 지닌 하나의 개인으로 초상을 찍은 것이 아니라 점포를 상징하는 존재로서 인물을 촬영했다. 자세나 화면 속 배치에 변화가 있지만 사진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오랫동안 해당 업종에 종사한 자 특유의 안정감을 풍긴다. 종가집 맏며느리처럼 어딘가 단아하면서도 통이 큰 인상의 지업사 여주인, 묘하게 불상을 닮은 용모의 후덕한 불교용품점 여주인, 세월과 감각으로 다져진 감식안이 엿보이는 골동품 가게 인텔리 남자 주인.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 환경에 순응하는 보호색(작가)을 연상시키는 이러한 유사성은 유형학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판매 공간에서, 정면으로, 명확히 초점을 맞추어, 안정된 자세로 찍는 촬영 방식은 기념비적 영원성을 사진에 부여한다.


하지만 <공간-사람-공간>은 기념사진이 지닌 고정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직업과 인물이라는 점에서 가장 큰 유사성을 보이는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의 『시대의 얼굴들(Antlitz der Zeit)』(1929)과 비교해보면 차이는 명확하다. 잔더의 사진들은 직업군을 대표하는 ‘전형’을 도출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이에 따라 우연적이고 순간적인 속성은 최대한 배제하고, 직업의 전형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사진이 연출되었다. 인물들은 복식, 소품, 자세를 통해 해당 직업의 보편적인 유형을 대변한다. 흰색의 작업복을 입고 밀가루를 섞는 사발을 쥔 제빵 장인이나, 쌓은 벽돌을 배경으로 손삽을 들고 있는 미장이의 사진이 대표적인 예다. 반면 윤정미의 사진들은 전형이라고 간주하기에는 우연성과 개별성이 두드러진다. 잔더의 사진에 비해 윤정미의 사진에는 연출이랄 것이 거의 없다. 인물의 자세는 작가가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인물이 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각자 몸에 익은 자세로 편한 위치에 서거나 앉아서 사진을 찍는다. 더군다나 인물이 그 자체가 아니라 공간의 일부로서 찍히기 때문에 인물은 공간의 뒤쪽에 작게 배치되거나 물건에 가려 잘 보이지 않기도 한다. 정장을 갖춰 입은 목사나 자개장 판매원처럼 직업에 어울리는 복장을 한 경우도 있지만, 가죽재킷에 색안경을 낀 문고리 가게 주인처럼 해당 점포에 딱히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경우도 있다. 인위적 포즈도 없고, 소품이 활용된 경우도 없으며, 영업 중 빠르게 사진을 찍어야하기에 조명 등 특별한 세팅도 없다. 작가의 순간 판단과 상황에 따른 우연성이 가미된 사진은 절반쯤 스냅사진의 속성을 띤다. 기념사진의 항구성과 스냅사진의 가변성이 기묘하게 버무려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공간-사람-공간>은 아카이브를 차용했으나 동시에 아카이브가 아니다.


과학적 아카이브의 핵심은 표본의 편재성과 분류의 합리성이다. 하지만 본성상 모호한 시각 이미지는 체계에 복속시키려는 아카이브의 ‘정주의 원칙(the principle of domiciliation)’³을 끊임없이 벗어난다. 20세기 인간의 전형을 재현하기 위해 이미지를 길들이려는 온갖 노력을 한 잔더의 사진도 개인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 ‘실직한 선원’이라는 표제와 안 어울리게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는 남자나, ‘젊은 농부들’이라는 제목과 달리 한껏 성장을 해 도시의 사무직 근로자와 구분이 안 되는 세련된 청년들은 피사체의 자의식이 표본화를 뚫고나온 사례다.⁴ 윤정미의 <공간-사람-공간> 역시 아카이브에 길들여지지 않는다. 애초에 해당 지역의 상권 전체를 대변하거나 해당 직군의 전형을 도출하려는 객관적 조사의 의도가 없었으므로, 이 작업에서 아카이브라는 외형은 특정 지역성의 발현이나 다양한 진열 방식(상인별 분류 방식)의 차이 혹은 집적된 사물이 지닌 시각적 장관을 기록하기 위한 전유의 전략이다. 더욱이 유형학의 보편성을 끊임없이 침범하는 개별성의 흔적이 도처에 산재해 있으므로, 작업은 아카이브로 단정할 수 없는 중층적이고 양가적인 속성을 지닌다. 


이번 상업화랑의 전시는 이 복합성에 시간성의 층위를 더했다. (사진의 대상이 된 공구상이 즐비한) 을지로라는 전시장의 위치와 2달여의 긴 전시기간은 일종의 진행형 프로젝트를 탄생시켰다. 전시 기간 중 과거 촬영대상인 상점들에 다시 찾아가 15~18년이 지난 후의 변화를 기록하는 것이다. 의외로 여전히 건재한 몇몇 상점들과 세월의 풍파를 겪은 주인장의 모습은 또 한 번 아카이브와 <공간-사람-공간>의 이중적인 관계를 건드린다. 시간이 흘러 손님이 바뀌었고 물건도 바뀌었다. 관광지가 된 인사동에서 매대의 앞을 차지하는 것은 중국산 기념품이고 전통적인 상품은 뒤로 밀려난다. 이러한 시간적 변화의 기록은 아카이브적 속성일 것이다.⁵ 반면 세월의 습격을 온몸으로 받은 상인의 변화는 인생이라는 험난한 여정을 오롯이 견뎌야하는 ‘개인’의 존재를 증언한다. 시간은 압구정 오렌지족 같은 껄렁한 외모의 청년을 중후한 중년 신사로 탈바꿈시켰다. 파는 물건도 변함없고 가게도 여전한데 인물만 홀로 바뀌었다. 15년 전의 청년과 15년 후의 신사를 여전히 상점과 동격인 동일한 표상으로 볼 수 있을까? 인물의 변화는 유형이라는 전형으로 포섭되지 않는 개별성의 힘을 입증한다. 15년 전 <공간-사람-공간>이 지니던 공시적 양가성은 이제 통시적 양가성으로 확장된다. <공간-사람-공간>의 매력은 보편과 특수, 전형과 개별 사이를 맴도는 그 잡히지 않음에 있을 것이다. 사진 이미지 본연의 속성이기도 한 그 모호함 말이다.


글. 문혜진



1. 본 글과 맥락은 다르지만 이 표현은 다음의 글에 쓰인 적이 있다. 최연하, 「그 여자의 박물관」, 『월간사진』, 2007년 5월, pp. 68-79.

2. 윤정미, 「아티스트 릴레이 인터뷰」, 『월간미술』, 2002년 6월. 102-105쪽.

3. Jacques Derrida, Archive Fever: A Freudian Impression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8), p. 2.

4.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다음을 참조하라. 김용선, 「아우구스트 잔더의 인물사진 연구」, 『서양미술사학회 논문집』 16 (서양미술사학회, 2001), 165-168쪽. 

5. 실제의 증거라는 매체 속성상 모든 사진은 아카이브적 사물이기도 하다. Okwui Enwezor, "Archive Fever: Photography Between History and the Monument," Archive Fever: Uses of the Document in Contemporary Art (New York: Steidl/ICP), 2008, p.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