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K_WORK

참여작가: 이문화, 이상원, 오용석, 윤정미, 손원영

Artists: Mun Ho Lee, Sang Won Lee, Yong Seok Oh, Jeong Mi Yoon, Won Yeong Son

 5 - 11 Dec. 2017

Eulji-ro

'Work'와 'Walk'! 영어 발음 중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구분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단어 조합이다. 같은 단어처럼 발음되지만 그 뜻이 연결되지는 않는다. 'Work'는 '일하다, 작업하다, 작동하다'의 뜻이 있고, 'Walk'는 '걷다, 거닐다, 산책하다'의 뜻이 있다. 


 '일하면서 걷는다'? 본 전시는 '을지로'에서 '작업하며 거닐고자' 하는 작가들이 기획한 전시다. 을지로는 대중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오랫동안 작가들의 작업공간이 산재하는 장소다. 왜 을지로가 작가들의 공간이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을지로는 서울시청 광장(태평로 1가 31번지)에서부터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을지로 7가 1번지)까지 서울의 심장부를 동서방향을 관통하는 3km 정도 길이의 6차선 도로로서, 을지로 1가부터 7가까지에 해당한다. 이 길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동대문, 서쪽에는 남대문과 시청, 남쪽에는 남산과 명동, 북쪽에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이 위치한다. 을지로는 가로길로서, 아래로는 퇴계로, 위로는 청계천로, 종로가 차례로 평행하여 위치하고, 서울을 남북으로 잇는 세로길인 장춘단로, 동호로, 창경궁로, 충무로, 삼일대로, 남대문로와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차례로 교차하여 만난다. 을지로는 시청 근처 을지로 1가와 2가를 중심으로 여러 기업과 금융기관이 밀집해 있고, 3가 일대에는 명보, 국도, 중앙, 스카라 등 극장이 많았으나 이제는 없어졌으며, 4-5가 주변에는 방산, 중부시장 등 도매시장과 건설자재, 조명, 가구, 공구 상가가 밀집해 있다. 을지로는 근대기에 조성되어 확장, 변형되어 오늘날 복잡한 양상을 띤다. 누적된 도시질서가 새로운 재개발의 압력을 맞아 쇠락과 부조화를 드러냄과 동시에, 강한 연대와 저항을 보여준다. 특히 서쪽의 고층 업무시설과 동쪽의 도산매의 패션산업 시설 사이에 자리한 오래된 저층의 연접 산업지역 건물들에는 건설자재, 조명, 가구, 공구 점포들이 속해있다. 이들은 수백 년을 유지해 온 역사적인 건물과 조직, 나아가 구획정리 사업의 흔적을 담고 있다. 여기에는 또한 방산시장, 중부시장, 흥인시장, 광장시장과 같은 오랜 도매시장들이 있다. 마천루가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어마어마한 땅값을 자랑하는 서울 한가운데에 재래시장이 밀집한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이곳을 한시라도 빨리 철거하고 개발을 추진하자는 주장이 있지만, 동시에 최근에는 을지로 4가와 5가의 건축자재와 인테리어 도매상가의 인기가 온라인 구매자들 사이에서 심상치 않다. 다시 말해 소위 '업자'들만 들락거리던 도매상가와 시장을 보통 사람들이 소매로 이용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살리기도 어렵고 죽이기도 어려웠던 도심의 골칫거리가 보통사람들의 참여로 자연스럽게 명물로 되살아나지 않을까 싶다. 또 다른 을지로의 문제적 장소는 1960년대 후반에 종로3가부터 퇴계로3가까지 을지로를 세로로 가로질러 일렬로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건물인 세운상가 건물군이다. 즉 세운상가는 현대상가(현 종로세운전자상가), 아세아상가, 청계상가, 대림상가, 삼풍상가(현 삼풍넥서스), 풍전호텔(현 호텔 PJ), 신성상가, 진양상가가 북에서 남으로 이어지고, 이들 중 을지로에는 대림상가와 삼풍상가가 위치한다. 이 곳은 일제 강점기 말미에 2차 세계대전 당시 공중폭격에 대비해서 도심의 목조 건물의 대규모 피해를 막기 위해 건물을 짓지 않고 공터로 비워두던 소개공지였다가, 해방 후에는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이재민들과 월남한 이주민들의 판잣집이 들어서고 사창굴이 즐비하면서 서울시의 대대적인 정비와 개발사업이 추진된 곳이다. 박정히 대통령 시절 서울시장이었던 김현옥이 사업을 추진하고, 김수근이라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제자이자 우리나라 모더니즘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가 설계를 맡았다. 이 야심찬 프로젝트는 건물들을 연결하여 지상에는 자동차 도로와 주차공간을 마련하고, 그 위에는 인공데크에 보행자전용 통로를 만들고, 건물 안에는 상업과 주거 기능이 복합된 '도시 속의 도시'를 구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추진과정에서 정치적 사건과,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원래의 계획이 수정되어 불완전하게 시행되었다. 세운상가는 이러한 세월의 부침(浮沈) 속에서 명성을 누리다가 쇠락의 길로 접어들어 2000년대 초반 청계천 복원사업과 더불어 철거될 운명에 처했지만, 이후 2014년에 서울시의 세운상가군에 대한 전면철거 방식의 폐기 결정으로 극적인 재생의 길로 급선회하게 된다. 이 건물들의 문화사적 의의는 근대화를 향한 개발지상주의의 정치경제학적 논리와 인본주의적 모더니즘 건축미학의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근대의 기계화, 산업화, 도시화의 물결 속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강하게(Citius, Altius, Fortius, Faster, Higher, Stronger)"라는 근대 올림픽의 정신에 입각해서, 우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잘 살아 보세'라는 절박한 목표를 향해 매진했다. 그렇게 부자가 되고, 명예를 얻고, 지식을 쌓고 … 성공하기 위해서 우리는 마치 경주마처럼 소소한 일상을 희생하고 소중한 사람들을 저버렸다. 그 맹목의 과정에서 남은 것이라고는 공허한 자신과 소원한 이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우리는 주어진 일상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벗어나지 못하고, 커지는 욕망을 내려놓지 못해 버겁게 뛰고 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 깨닫는다. 어딘가에 있을 탈출구를 소망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스스로 바뀌지 못한다면 우리의 터전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상상을 해야겠다. 옛 것과 새 것이 서로를 해치지 않으면서 공존하는 것은 아주 단순한 바람이지만, 하나가 다른 하나를 완전히 소멸시키고 장악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시간과 비용,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방식을 택해야 한다. 


프란시스 알리스(Francis Alÿs)는 유형의 작품이 아닌 무형의 '걷기 퍼포먼스'를 하는 예술가이다. 그는 시골이든 도시든 어딘 가를 걸으면서 정치학(politics)을 시학(poetics)으로 바꾼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 나아가 저항의 메시지를 언뜻 보기에는 아무 의미도 없고 상관도 없는 '걷는 행위'를 통해 전달한다. 아마도 이러한 행위는 19세기 중후반 보들레에르(Charles Baudelaire)와 벤야민(Walter Benjamin)이 말한 메트로폴리탄 파리에서 마차 대신 자동차가 다니게 된 대로(Boulevard)를 걷고, 에펠 탑과 만국박람회와 같은 장관을 구경하고, 유리외벽에 싸인 거대한 상업공간인 아케이드를 거닐며 모더니즘을 피부로 체험하던 부르주아 산책자들(Flaneur)과 맞닿아 있는지 모른다. 아니면 걷는 행위는 20세기 중반의 디보르(Guy Debord)를 비롯한 상황주의 인터내셔널 (Situationist International) 주장자들이 주장했던 반자본주의적 저항과도 연결될 수 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대중매체의 시대에 '이미지들에 의해서 매개되는 사람들간의 사회관계이자 축적된 자본'으로서의 '스펙터클(spectacle)'의 사회에서 대중들은 자신들이 지배해야 할 상품과 자본에 의해 오히려 지배 받는 수동적인 주체가 된다. 이러한 스펙터클의 사회를 공격하고 전복시키기 위해서는 효율성, 이윤의 극대화와 같은 자본주의의 가치와는 반대되는 실천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저항의 방식 중 하나인 '표류한다, 떠돈다'는 의미의 '데리브(dérive, drift)' 전략은 주로 도시 경관 속에서 주변 환경에 따라 떠오르는 개인의 감정에 의거해 특정한 목적 없이 거니는 심리지리학적 행위를 일컫는다. 디보르는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단조롭고 획일적인 일상생활 속 경험의 보편성에 반대하여, 복잡하고 다양한 개인의 경험의 개별성에 주목한다. 이제 21세기 소위 신자유주의의 고도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디지털 혁명과 인공지능 혁명의 연타를 맞으며 우리는 효율보다는 비효율, 양보다는 질, 근면함보다는 나태함의 방점을 두는 예술적 창의성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렇다면 '걷는 행위(walk)'가 왜 '예술 작업(work)'과 관련이 있는지 질문하게 된다. 걷는 행위가 왜 도시의 특정한 장소와 관련되는지 고민하게 된다. 한국적 근대화의 산물과 정신이 바로 을지로에 현존한다. 을지로에는 시간과 공간이 마치 지층처럼 물화되어 축적되고 단절되어 있다. '폐기와 보존', '보존과 창조' 사이에서 그 어떤 것도 선택하기 어려운 난제인 을지로의 도매상가, 세운상가가 해답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이 가시화하는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강하게'의 논리는 이제 '보다 느리게, 보다 낮게, 보다 약하게'와 함께 공존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삶의 질적인 가치와 여유를 위해서, 걷는 행위로 상징되는 실천을 해야 한다. 거기에는 예술작업이 소요행위가 되는 변환, 작가의 노동이 대중의 유희가 되는 변환이 필요하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이문호, 이상원, 오용석, 윤정미, 손원영 작가의 작업은 을지로와 어떤 식으로는 연결되어 있다. 을지로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작업하고, 을지로를 대상으로 작업하고, 을지로로 상징되는 공간, 사람, 기억과 같은 주제로 작업한다. 무엇보다 이들은 을지로의 곳곳에서 전시한다. 이들이 만들어낸 작업을 을지로 구석구석을 산책하고 경험하면서 우리의 일상과 시대에 저항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 작은 내파(內破)의 울림은 생각보다 강력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