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수 GYEONG SU AHN

비문중

23 Nov - 12 Dec. 2018

Eulji-ro

을지로 연가


요즘 을지로는 2030 세대에게 새로운 핫플레이스이자 힙한 장소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의 가장 중심이면서, 주변의 고층 빌딩을 두고, 아직도 남아있는 서울의 오래된 풍경이 젊은 세대를 끌어당기는 듯 하다. 기성세대의 추억을 자극하는 레트로(Retro) 문화에 젊은 세대의 새로운 감각을 더한 뉴트로(Newtro) 열풍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빈티지 분위기의 자개장, 30-40년전의 공중전화기와 오래된 텔레비전으로 꾸며진 커피숍, 와인 바, 빵집들은 오래된 건물에 간판이 없거나 보이지 않는데도 사람들로 항상 붐빈다. 또한, 저녁이 되면 노가리골목은 수백 개의 간이 테이블과 의자가 길에 펼쳐지며, 20대 초반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노가리골목에 모여들어 평일과 주말 구분 없이 활력 있는 분위기의 사람들로 가득 찬다.


을지로는 서울의 가장 오래된 장면을 담고 있는 지역 중의 하나로서 수 십 년간 운영되어온 인쇄소, 용접가게, 주물상, 수도 없이 많은 건축자재, 조명가게들이 즐비하다. 을지로의 세운상가 일대를 중심으로 이 지역을 ‘대장간’이란 별명으로 불리는데, 그 안에서 미사일도 만들어 진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을지로 안에서라면 못 만드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한편, 한국의 미술학도라면 재료를 구입하러 들락거리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위치적으로 서울의 중심임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건물이기 때문에 임대료가 서울의 다른 지역에 비해 저렴하다. 그 때문에 많은 예술인들이 모여들어 상가건물의 위 층을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다. 엘리베이터도 없고 좁은 계단의 건물이지만 구석구석에 자리잡은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한다. 약 십 년 전부터 시작된 예술인들의 모여드는 현상이 지금 을지로는 크고 작은 예술제, 전시회 등과 ‘을지로 서편제’라 불리는 예술인 네트워크 프로그램까지 만들어졌다. 

을지로는 여러 가지 다른 매력과 이야기가 공존한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이미 시작되고 있는 재개발로 철수하는 상점들, 철수를 준비해야 하는 상점들, 개발을 기다리는 건물주들 등의 이야기들도 공존하고 있다. 


안경수 작가는 지난 4월부터 을지로 일대를 리서치 하기 시작하여, 삼십여 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다. 12월에 문화체육관광부,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서 을지로에 위치한 ‘상업화랑’에서 ‘비문증(Myodesopsia)’라는 타이틀로 개인전을 열었다.

안경수 작가의 그림 속의 을지로 골목의 풍경들은 조용하다. 상점이 문을 닫은 후의 셔터에 남은 전단지와 스티커들, 떨어진 청테이프의 흔적들, 장사 마감 후의 덮개가 덮인 모습, 공사장 가림 막, 잡초, 바닥의 토사물, 용접할 때의 불빛처럼 사람이 없는 풍경, 그렇지만 그것에 담긴 이야기가 보인다. 서울의 화려한 번화가의 한 켠은 어둡고, 초라하고, 고독한 이 풍경이 세심한 예술가의 눈에 비친 도시이다. 이 보잘것없는 이미지들 중에서 ‘덮개’라는 작품은 무엇인가를 덮은 거적때기 같은 것인데, 그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 보다는 시선은 표면에 머문다. 어제와 오늘이 다른 형태로 반복적이게 덮어지는 덮개가 그곳에서 삶을 살고 있는 존재성을 대신하는 것 같다. 물질적인 대상의 그림 안에서 비물질성을 재현되고 있다. 


안경수 작가는 실재 비문증 증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비문증이란 시각에서 먼지나 날파리가 날아다니는 것처럼 느껴지는 증상으로 손으로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고, 시선을 바꾸면 이물질의 위치도 변하는 현상이다. 날파리처럼 흩뿌려져 있는 작가의 시선이 하나의 레이어가 되어 그려졌고, 아크릴화라고는 믿지 못 할 만큼 표면이 평평하고 매끈하다. 매우 고운 캔버스에 마치 동양화 기법처럼 물감을 얇지만 여러 층으로 올려 오랜 시간 동안 매우 정교하게 그려졌다. 회화가 완성되는 동안 여러 겹의 레이어를 갖게 되고, 화면의 레이어들은 풍경에 접근하려는 작가의 관점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부유하는 장소와 사물에 관한 안경수 작가의 그림은 관찰을 넘어서서 경험한 것을 그려내 그림을 통해 무심코 지나쳤던 풍경 속 대상들 하나하나에 존재하는 사회적 가치를 발견하게 한다. 



철거 중인 건축물의 풍경, 그 위에 덥힌 파란색 가림 막, 그리고 그 앞을 가로막고 있는 바리케이드와 그 위에 그려진 풍경화가 있는 모습은 내가 도시 속 한 풍경에서 동시에 발견한 사소하고도 이질적인 세 개의 막이었고 이런 ‘막’들은 ‘풍경을 경계barrier화 하고 있었다. 이주를 거듭하며 풍경이 경계화되는 변화의 사이에 이런 장소는 매번 ‘공백의 상태’를 갖는다. 나는 이곳을 ‘사이의 풍경’ 이라고 부른다. 이곳은 마치 방치된 빈 공터처럼 한시적으로 규정되지 않은 상태, 또는 불안정한 상황을 격는다. 나는 이런 빈 공백의 경계를 바라본다. 임의의 상태에 있는 이 풍경 속에서 도시를 지향하는 풍경의 욕망의 잔해들을 바라보면서 유동하는 이주된 대상을 그리고 동시에 그림은 그 대상이 된다. 이곳은 경계 너머의 풍경이고 규정할 수 없는 모호함을 지닌 대신 "내가 무언가를 채울 수 있는 곳" 이다. 불안정한 레이어, 다시 말해 균형이 없는 불안정한 풍경을 보게 되는데 ‘공터’ 는 그런 공간이다. 나는 모본의 대상과 회화의 온전한 오버랩을 믿거나 바라지 않는다. 그 둘의 관계는 불가항력적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것을 인정한 태도를 갖고 풍경에 접근한다. 그런 균형이 덜 된 자리에서 그림은 하나의 막이 되고 풍경과 그림은 서로가 균형을 찾아가는 무리한 시도를 거듭한다. 그 사이에서 그림은 모본이 된 장소 안에서 또 하나의 레이어가 되려 하고 풍경 안의 개체 또는 오브제가 되어 그 장면을 흔든다.

안경수 작가노트